정병욱 칼럼니스트

21세기 들어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거리에 사람이 없으니 자연히 캐럴도 울려 퍼지지 않았다. 지난해 말에 저작권법 일부 개정으로 ‘캐럴’이 공유저작물로 인정되어 코로나 사태만 아니었다면 오히려 평소보다 캐럴을 자주 들을 수 있었을지 모르는 터였다.

사실 고대 프랑스어 ‘carole’에서 유래한 캐럴은 본래 특정한 춤곡을 뜻하는 단어였다. 바로 우리나라의 강강술래처럼 여러 사람이 어우러져 함께 빙글빙글 도는 춤 말이다.

그 기원이 중세 성기(High Middle Ages)에 해당하는 11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흔히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일반적인 고전 서양음악보다 훨씬 역사가 깊다. 당시 캐럴은 우리가 예상하는 캐럴의 모습과 달랐다.

기독교인이나 기독교 문화 중심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의 문화였다. 성탄절에도 불렀지만 다른 절기에도 불렸으며 마치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크리스마스처럼 음주와 가무가 뒤따르는 공동 축제의 음악이었다. 

이 같은 세속적인 성격 탓에 캐럴은 수백 년 동안 기독교에서 배척됐다. 캐럴을 그나마 교회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16세기 종교개혁의 주인공 마르틴 루터다. 음악을 사랑하고 노래를 즐겨 불렀던 그는 캐럴을 기독교 문화의 일부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뒤이어 근대를 거치며 기독교 문화가 현대 서구 문화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고, 덕분에 역설적이게도 캐럴은 교회 밖에서도 친숙한 음악이 되었다.

먼 유럽 과거까지 들추지 않아도 캐럴이 다양한 모습을 거쳐왔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1990년대, 아니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의 캐럴은 지금보다 훨씬 대중적이면서도 동시에 경건주의적 면모를 띠었다.

1950년대에 복음 전파의 수단이 된 ‘새벽송’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야간 통행금지 정책이 유지된 1982년까지, 그것이 통행금지로부터 자유로운 크리스마스에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집중적으로 사람들에게 노출되었고 함께 불렸던 덕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는 크리스마스이브에만 밖에 나오지 않아도 되고 한국 기독교의 성장이 정체에 이르면서 심지어 2000년대 이후 교회음악을 막론하고 전체 음반 시장이 냉각화되고, 당대 교회음악 트렌드가 오로지 교회 내부에서 이뤄지는 ‘워십’ 위주로 바뀌면서 캐럴은 점점 더 귀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이 캐럴을 전혀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제 봄만 되면 각종 차트 순위에 고개를 내미는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2012)처럼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1994)나 아리아나 그란데의 ‘Santa Tell Me’(2014)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이유의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2010)나 성시경, 박효신 등이 참여했던 크리스마스 앨범 ‘Jelly Christmas 2012 HEART PROJECT’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꽤 찾아듣는 크리스마스 레퍼토리 중 하나다. 그나마 귀에 들리는 캐럴이 그저 히트 계절송 하나로 남은 것은 심경을 더욱 착잡하게 한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고요한 세상에 예수님의 탄생을 진정성 있는 노래로 축하한 예술가들이 있다.

교회 안팎에서 활약하는 보컬 그룹 헤리티지가 모처럼 ‘Christmas Everywhere’라는 제목의 진한 블랙 가스펠풍 캐럴 메들리 앨범을 발표했으며, 역시 대중음악 가수로 유명한 박기영은 비록 정통 캐럴은 아니지만, 조영미 선교사의 시에 음악을 입힌 싱글 ‘다시 가기 원해’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되새겼다. 

돌이켜 보면 복음은 역사 속에서 늘 곁에 있는 것이기도, 그런데도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귀에 잘 닿지 않는 것이기도 해왔다. 유난히 조용했던 성탄절에 괜히 캐럴 한 곡이라도 더 뒤적여봤던 까닭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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