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5월의 첫 주일(6일) 어린이주일을 맞아, 교회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다.

기초가 없는 건축물이 있을 수 없고, 뿌리가 없는 나무가 없듯이 인생의 기초와 뿌리는 어린이 시기이다.

인류는 수천년 동안 어린이를 억압의 대상으로만 알았지 그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찍이 하나님으로부터 쉐마(신6:4~9)를 명령 받은 유대인들은 부모가 책임 있는 교사가 되어 자녀들을 율법의 아들로 가르쳐 우수한 민족으로 형성되어 갔다.

한국이 전쟁의 폐허에서 60년도 못되어 경제성장 10위국으로 도약하여, 원조를 받은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부상하여 OECD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것은 세계가 찬탄한다.

그러나 이런 배경에는 교육이 있었으며, 그 교육의 바탕에는 100여 년 전부터 교회를 통해 끊임없이 성경을 바탕으로 한 주일학교 교육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든 교육의 기초는 어린이교육이다. 따라서 교회나 사회는 어른들이 ‘어린이 같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마18:3)는 주님의 말씀에서 ‘천국시민의 모델’이 바로 어린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 주님이 내세운 어린이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일찍이 영국 시인 윌리암 워즈워드는 ‘무지개’라는 시에서,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며 가슴이 뛰는 어린이를 ‘어른의 아버지’라고 절창했다.

즉 자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어린이의 품성이야 말로 세상 일로 가슴이 메마른 어른들에게 인생과 우주의 가치를 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나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오늘 우리의 가정과 학교에서 이 귀한 어린이 품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정서나 인격교육은 제쳐두고 오직 점수에만 매달려 혈안이 된 학교의 입시교육제도가 어린이 품성을 파괴한다. 또한 자녀를 영어나 논술, 피아노학원 등 빚을 내서라도 사교육에 보내어 1등이 되게 하려는 어머니들의 극성스런 자기 성취욕이 고귀한 동심을 사멸시키고 있다.

이러다보니 우리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학교는 경쟁터요 친구는 경쟁자로 인식되어 극도의 이기주의자로 변해 약자를 왕따 시키고, 때리고 금품을 갈취하는 살벌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로 변질되었다.

성공제일주의가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오늘의 어린이와 청소년교육의 잘못된 가치관의 폐해는 심각하다. 여기에 우리교회와 사회의 미래는 결코 없다.

교회의 어린이와 청소년교육의 바른 성장을 통해 미래교회를 여는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는 어린이나 청소년교육의 영성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언젠가 한국교육선교회의 설문조사에서, 교회의 영성집회에서 하나님을 만나 헌신한 목사와 장로가 72%였다는 보고서가 이를 말해준다. 사춘기에 주님을 만나 인생관을 확립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는 교회마다 장학제도를 두어 자질이 우수한 인재를 계발하고 후원, 양육해야 한다. 우수한 인재 한 사람의 창조적 활동이 수천, 수만 명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인류문명사에 빛을 뿌린 사람들의 배후에는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는 교회 청소년들에게 민족과 인류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지금은 디지털 지구촌의 시대로, 시공간이 빠르고 넓게 확대되어 구속사적 역사관을 지닌 교회의 인재들이 인류를 향해 봉사할 수 있는 때가 도래했다.

지금 한국의 선교사 2만 여명이 지구촌 187개국에서 땀 흘리며 복음과 문명계발에 앞장서고 있다. 선교사의 60% 이상이 교회학교 출신이라는 통계는 교회학교야 말로 이 시대의 유일한 희망이고 미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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