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3:15~20)

북왕국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모압과 한바탕 전쟁을 치루기 위하여 에돔광야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전쟁이 한 일주일 쯤 지나갔을까요? 먹을 물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때에 메마른 골짜기, 마른 광야에서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왕과 유다왕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갑니다. 두 왕의 내방을 받은 엘리사 선지자가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15절)라고 말합니다. 

왜 거문고 입니까? 거문고는 줄이 생명입니다. 줄이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또 거문고 줄을, 조율을 제대로 해야 좋은 연주를 할 수가 있습니다. 아마 엘리사가 기도하기전에 ‘거문고’를 가져오라 한 것은 이스라엘왕이 전쟁에 ‘물’이 필요해서 물을 찾으러 왔지만 물이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볼 때는 이스라엘 왕들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의 줄이 풀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잘 못 살아감으로 인해 믿음의 줄이 느슨해지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이 게으르고 나태함으로 말미암아 기도의 줄이 헝클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전쟁에 이기고 싶으냐? 그러나 전쟁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이 없느냐? 그러나 물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끊어진 줄을 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느스해진 줄을 제대로 조율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내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단편 「93」이라는 단편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대포를 싣고 가던 배가 바다 한 가운데서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선원들은 이 풍랑을 막기위해 힘을 다합니다. 그러다가 거친 파도에 대포를 묶고 있던 쇠사슬이 끊어져 버립니다.

큰일 났습니다. 대포를 잃어버리면 풍랑을 막아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자. 대포를 붙들기 위해 선원들은 안간힘을 쓰는데 이 때 소중한 진리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풍랑을 잠재우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있구나. 풍랑보다 더 중요한게 있구나. 멋대로 굴러 다니는 대포를 붙드는 것이구나! 외부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거문고를 연주하려면 거문고 줄이 팽팽히 조율되어 있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거문고를 통해 모압이 문제가 아니고 이스라엘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 때 보다 헝클어진 신앙의 자세를 조율해야 할 때입니다. 나의 예배생활, 기도생활을 조율해야 할 때입니다. 나의 거문고 줄은 팽팽히 조율이 되어 있는지 하나님과의 바른 위치에 서 있는지 찬송의 줄이 풀려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합니다.

기도의 줄은 팽팽하게 조율이 되어 있습니까? 말씀의 줄이 제 소리를 다 하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모든 악기는 정기적으로 또 연주전에 조율을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 연주를 합니다. 

지금은 모두의 기본생각이 코로나에 맞추어져 있으니 무엇을 해도 음이 맞질 않습니다. 생활이 헝클어져 있습니다. 각자의 소리만 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누가 뭐래도 기준이 되는 A키, ‘라’음에 맞추어야 합니다. 중심을 잡고 조율을 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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