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대면 예배를 위해서 텅 비어있는 좌석을 바라보며 강단에 오르는 젊은 목회자의 눈빛은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복잡하고 미묘했다. 카메라의 작은 렌즈에서 그 예배당을 사랑하던 이들의 눈을 찾아내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무리 눈을 크게 떠보아도 텅 빈 의자들이었건만 그 의자들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그리스도의 현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젊은 목사의 눈빛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온 노련한 연기자들도 카메라가 의식되기 시작하면 몸이 굳어져버린다고 한다. 하물며 육신의 눈은 텅 빈 의자에 꽂혀 있는데 믿음의 눈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붙들어야 하는 젊은 목사의 눈빛의 떨림을 뉘라서 그려낼 수 있을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결단했던 무모함의 댓가로 제단에 아벨처럼 피를 흘려야만 하는 것일까.

▨… 기진맥진했다. 젊은 목사임에도… 회중이 없는 예배는 골고다의 십자가를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는 것같은 무게였으리라. 그 목사에게 노(老)목사가 시를 한 편 건넸다. ‘빈들’을 ‘예배당’으로 대치시키라면서. “늦가을 바람에, 수숫대만 서걱이는 빈들입니다. 희망이 없는 빈들입니다. 사람이 없는 빈들입니다. 내일이 없는 빈들입니다. 아니, 그런데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무도 들려 하지 않는 빈들, 빈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당신은”(고진하, 빈들)

▨… 올해의 성탄은, 목회자들에게는 한숨이요, 눈물일 수밖에 없다. 높은 사람들은 교회의 형편과 처지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다섯 명 이상의 모임은 금지한다는 결정을 발표했다.(22일 현재) 교회들이 코로나 방역을 위해서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가는 조금도 감안하지 않은 채로. 성탄 축하예배와 송구영신예배까지 포기해야 하는 교회가 교회일 수 있겠느냐는 질문까지도 제기할 수 없어 많은 목회자들은 애꿎은 눈물만 삼킨다.

▨… 우리 성결인 목사들은 텅 빈 예배당이 비어있지 않음을 믿어왔다. 그러하기에 카메라가 없어도 빈 제단에 무릎을 꿇는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만이라도 주는 우리를 용서하소서”(고정희, ‘이 시대의 아벨’)라고 부르짖으며. 우리 성결인 목사들은 고백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텅빈 예배당에서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라고. 그분만 바라보며 텅빈 예배실을 지키는 성결인 목회자들의 눈물은 뉘있어 닦아줄까.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