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1:1~2)

존경하는 목사님에게 행커치프(handkerchief)를 소개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에 부흥회 강사로 오셨는데 행커치프를 하게 된 유래를 말씀하시는데 재미있지만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행커치프를 몇 장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넥타이는 평생 사용했기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묻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행커치프는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물건이라 인터넷 블로그를 찾았습니다.

인터넷 블로그를 읽어보고 가장 간단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당장 접어서 제가 자주 입는 검은 계열의 정장 주머니에 넣어 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어색합니다. 수요기도회 시간에 행커치프를 끼운 정장을 입고 설교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는데 예배에 참석한 성도님들이 내 행커치프만 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익숙해져 갑니다. 그리고 다른 정장을 꺼내 입을 때도 행커치프를 찾게 됩니다.

이제는 좀 더 다양한 방법은 없을까 하고 찾던 중 블로그 속 하나의 이야기가 시선을 집중하게 합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영화 「인턴」(INTERN)에서 멋쟁이 신사 로버트 드니로가 여성 CEO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행커치프를 갖고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빌려주기 위해서야. 여자들이 울거든. 예의바른 시대의 마지막 흔적이지.” 그의 말을 정리해 보면 행커치프는 ‘배려’라는 말이 됩니다.  

요즘 우리에게 어떤 것보다 꼭 챙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마스크입니다. 그리고 이 마스크를 위해 새로운 패션 아이템이 생겼는데 이것을 마스크 스트랩이라고 합니다. 마스크를 잠시 벗었을 때 목에 걸어두는 짧은 줄입니다.

그래서 요즘 새로운 패션이 생겼습니다. 마스크 스트랩에 마스크가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당당하게 걷는 모습입니다.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 가시나요?    

행커치프의 원래 용도가 배려를 위한 손수건이었던 것처럼 마스크와 마스크 스트랩의 원래 의미는 바이러스로부터 나와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그런데 제가 사용하는 행커치프는 면 소재가 아니라서 눈물을 닦는데 적당하지 않습니다. 마스크는 우리의 입과 코를 가리고 마스크 스트랩은 잠시 벗었다가 빠르게 다시 쓰기 위해 필요한 배려의 아이템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발견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우리 사회는 바이러스의 창궐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로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너무나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마스크를 쓰면 끝입니다.

행커치프의 원래 의미가 ‘배려’이듯이 마스크를 쓴 얼굴 속의 미소는 이 땅을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이끕니다. 

오늘도 마스크를 쓴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봅니다. 정장에 비친 행커치프도 함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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