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 목사

사유리의 선택은 옳은가? 비혼상태에서 자녀를 임신하고 출산한 그녀가 비혼모의 권리를 주장했다. 한국에서는 비혼상태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는 것은 불법이라서 일본에서 수정과 출산을 했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런 일을 감행한 후 한국에 대해 불법을 운운하는 일을 용기있는 일인듯 언론은 보도했다. 여성단체에서도 반기는 모양이다.

어떻게 이런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을까? 아무리 OECD 국가 중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라고 하지만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 은근히 출산을 장려하는 뉘앙스를 띄울 수 있단 말인가?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 각국의 최고위 정치와 경제 지도자들이 모였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논하며 결론을 내리길, 아무리 산업이 최고조로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사회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결코 윤리가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성의 권리인듯 비혼모의 권리를 논한다는 것은 오류다. 인류가 오늘까지 지상에 생존한 이유는 그나마 마지막 윤리의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과학의 발달이 복제인간을 만드는 일을 허락하지 않고, 일정한 선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었던 것과 같다. 그런데 대리모 형태의 비인간적 사회로 진입하려는 경계에서 비혼모의 권리가 무슨 말인가?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태어난 아기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는 것인가? 비혼모의 자녀가 걸어갈 정체성 혼란의 삶은 계산에 넣지 않아도 좋은가? 상업적으로 자식을 낳아주는 대리모 세상이 와도 좋다는 말인가? 기증된 정자로 인간의 씨가 어디로부터 온지도 모르고 혼합되고 역류해도 관계가 없다는 것인가?

비혼모 사회에 대한 논란이 아직 종지부를 찍지도 못한 상태에서 출산의 권리를 공개적으로 주장해도 옳은 것인가? 아직도 대부분의 나라는 인류역사가 지켜온 가정과 가족에 대한 제도를 통해 생육하고 번성해 왔다. 이를 거부하고 전혀 다른 인간사회가 생존하거나 번성한 적이 없다.

성경은 이러한 기초적인 인간사회의 윤리가 무너졌던 소돔과 고모라 도시의 멸망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가정과 가족에 대한 윤리가 바로 서지 못했을 때 인간이 맞이할 최후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오경에 나오는 율법의 정신은 가정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법이기도 하다. 윤리가 무너지면 인간사회는 약육강식의 짐승의 세계가 되고 말 것을 아시기에 이런 법을 세우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레위기의 윤리사상은 현대에도 통하는 윤리제도의 근간이다.

국가가 비혼모 풍조에 단호한 정책적 제동을 걸어야 한다. 기독교계는 창조와 윤리의 기초를 흔드는 의도적으로 비혼모가 되려는 패륜의 권리를 결코 용인할 수 없다. 단, 어떤 연유로든지 일단 이 땅에 태어난 생명과 출산모는 사랑으로 보호받고 돌봄을 받아야 할 것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던 국가대표선수 출신 젊은 어머니가 유아인 자기 자식을 어린이캠프장 화재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조국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떠나면서 이런 나라에서 더 살고싶지 않아 떠난다고 했다. 비혼모의 권리를 인정하게 된다면, 앞으로 가정과 가족의 제도가 무너진 나라를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까 노파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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