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침내 자유로운 몸이 된 느낌이야! 지교회에 있었던 그 여러 해 동안, 난 전시품에 불과했어.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을 수도 없었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수도 없었고, 가르치고 싶은 대로 가르칠 수도 없었어. 나는 나 자신이 될 수가 없었어.”(G.노이스, 목회윤리) 명문 대학과 신학교를 졸업한 짐 로크웨이(Jim Rockway) 목사가 13년의 목회생활을 경험한 후에 신학교의 교수가 되어 옛친구에게 토로한 말이라고 한다. 

▨… 예일대학 신학부의 목회신학 교수인 G. 노이스는 짐 로크웨이 목사를 소개하면서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목회자들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해 보라. 위선과 가면으로 마음에도 없는 짓을 해가며 올무에 걸린 채 살아가는 제2의 짐 로크 웨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든 직업 가운데서 가장 자유롭고 창조적이어야 할 목회사역이 그에게는 온갖 좌절을 안겨다 주는 속박과 압박이 되어버린 것 아니겠는가.”

▨… 로크웨이 목사는 이름있는 교회의 부목사로 5년, 그 후 담임목사로 8년동안 목회사역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결과로 신학교의 교수 자리에 초빙받았다. 통속적이지만 그는 알려진 대로는 성공한(?) 목회자였다. 그러나 그는 “나는 나 자신이 될 수가 없었어”(I could n’t be myself)라고 옛친구에게 토로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렇게 마구 휘두르는 양날의 검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목회자가 이 땅에는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 회중을 섬겨야 한다는 가르침에 짓눌려 자기 주장은 아예 눈에 띄지 않는 뒷전에 밀어둔 채 이민교회의 목회자들이 ‘베이비 시터’의 자리를 자청하듯 교인들의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한 오늘의 목회를 일러, 뉘라서 하나님 나라 세우기라고 강변할 수 있을까. 목회자는 영성적인 또는 도덕적인 모본이 되어야 한다는 요청이 뿜어내는 중압감을 올곧게 이겨내는 목회자는 또 이땅에 몇 명이나 있을까.

▨… 가난을 천형처럼 짊어져야 하는 목회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흔적을 찾으려 집요하게 달려드는 이들에게 가난한 목회자들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라인홀드 니버였던가. “단순한 도덕적 판단이 필연적으로 도착하게 되는 곳은 독선이다”라고 갈파한 사람은… 이땅의 목회자들은 이 독선까지 십자가로 감내해야 하는지를 자신에게 묻는다. 로크웨이 목사가 결코 자신의 목회생활의 멘토가 될 수는 없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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