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과분한 선물을 주시어 생명의 청지기로 삼으시며, 나와 이웃과 만유의 생명을 잘 건사하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존재를 소유로 바꾸고, 생명보다 물질을 중시하고 구원을 세상으로 대체했습니다. 성공을 위해 생명을 희생했고, 현세를 위해 영원을 저버렸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유인 것처럼 주제넘게 행동해 왔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살릴 의무는 지고 있어도, 생명을 죽일 권리는 갖지 못합니다. (…)생명의 주님, 이 땅 위에 생명의 꽃을 피워 주옵소서.”

▨… 앞의 글은 한국성결신문 제1252호(2020년 11월 21일자)에 발표된 한기채 총회장의 ‘생명존중주일 목회기도’의 몇 부분이다. 한기채 총회장의 기도 전문은 생명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어두워진 양심을 찌르는 촌철의 위력을 지니고 있음을 뉘라서 부정할 수 있을까. 비록, 이 기도문 앞에서도 회개를 외면하려드는 세상에 익숙해져 있다 하더라도.

▨… 알버트 슈바이처는 물었다. 다리가 부러진 새를 기르기 위해 부득이 곤충을 죽이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런 결정을 내릴 권리가 과연 주어져 있는가를… 그는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죽일 권리가 어디에 있느냐(evolution of ethics)고 물을 만큼 ‘생명에의 경외’를 강조해 모든 생명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귀하다고 주장했다.

▨… 유발 하라리는 대량생산이라는 기계문명에 갇혀 생명까지도 가차없이 상품화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고발했다. 그에 의하면, 암탉들은 비좁은 우리에 갇혀 키워질 뿐만 아니라 상업적 부화장의 수컷(계란을 낳을 수 없다)과 완벽하지 않은 암컷은 벨트에서 골라내져 질식사 당한다. 이런 병아리들은 매년 수억 마리가 넘는다. 닭이나 가축이 생명체라는 사실을 인간은 자신의 이익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 냉혹하게 무시하고 있음을 하라리는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사피엔스)

▨… 한기채 총회장은 성결인 목회자답게 “꽃을 피우지 못한 채 희생된 어린 영혼(낙태아)들에게 주님의 방법으로 한없는 은총을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며 “이제부터는 생명의 보호자와 양육자와 위로자로 살기를 서원합니다”라고 다짐을 고백하였다. 새삼스럽지만 우리 성결인들은 “인간이라면 다른 생명체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함(D.본회퍼)”을 확인해서 하라리가 고발한 냉혹한 이기심만은 넘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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