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한 순’에 비추어진 십자가

     하도균 교수
     하도균 교수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많은 비유적인 어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연한 순’으로 표현하였습니다.(사 53:2) 

독자 여러분! 예수께서 이 땅에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가장 능력 있고 권세 있으신 그분이, 이 땅에 오실 때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바로 이 부분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사야 53장에서 메시아를 예언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메시아를 통한 죄 된 인간의 회복과 세상의 구원을 먼저 말씀하지 않고,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메시아에 대한 묘사를 먼저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알아야, 그분을 믿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도 실패 않고 구원하시려는 계획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를 ‘연한 순’이라고 표현한 가장 큰 이유는, 예수께서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을 때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오시어, 본질이 연약한 인간 어느 누구라도 배제되지 않고 품어 구원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의 강인하고 초월적인 면(面)을 부각시켜 그 힘을 강조하였다면, 그 강함에 부딪쳐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생겨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아 예수는 ‘연약한 순’의 모습으로 오셔서, 누가 짓밟아도 짓밟힐 수는 있지만, 메시아와 부딪쳐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밀한 배려였습니다. 또한 이것이 어느 한 영혼도 제외되지 않고 모두를 품을 수 있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말 그대로, 무척 나약한 존재로, 자기를 지키고 방어할 능력이 없는 어린 아기로 태어나셨고, 인간의 연약함을 그대로 지닌 채 사셨습니다.

오히려 공격하면 공격당하고, 채찍으로 때리면 맞으면서, 그대로 못 박혀 죽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 안에 있는 죄가 메시아 예수를 멸시하고 급기야는 십자가에 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인간에게 있는 연약함이, 그리고 실패의 경험들이, 당신이 보내실 메시아 예수를 얼마나 짓밟고 무시하며 때리고 조롱할 것을요! 그런데 그 메시아가 그 죄 된 모습들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견뎌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들의 아픔과 연약함을 알고 그것을 대신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원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아픔이셨지만, 그 아픔을 감수하고서라도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십니까? 아들이 죄 된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것을 감수하고 사랑하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아들을 보내셔야 하는 마음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1:10-11). 

연약함에 담겨있는 잠재력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연한 순으로 표현한 또 다른 이유는, 연한 순 안에 있는 미래의 잠재력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연약한 순은 거목으로 자라나기를 시작하는 첫 단계, 출발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이 세상에는 어떠한 생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된 이 영원한 생명은 연약한 순처럼 힘이 없고 작아 보였지만 그분의 능력 있는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성장하고 확대되어 마침내 온 세상에 퍼져나가게 될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연약함과 실패와 패배가, 더이상 미래가 없는 인생의 끝이 아님을 보여 주시고 계신 것이지요.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요!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그 모습 자체가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이었고, 한 영혼도 제외하지 않고 품고 구원코자 ‘연한 순’의 모습으로 오셔서 연약한 인간의 삶을 사신 것도 십자가의 삶이었다는 것을요!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메시아의 십자가의 삶의 절정이었지, 그 십자가의 죽음만 십자가의 삶이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대강절을 앞두고 있는 우리는 이러한 차원에서 대강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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