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최초의 성결교회로 흔들림 없는 신앙 자랑
1920년 함열 복음전도관으로 설립
일제·6.25전쟁 고난 겪으며 성장
지교회 3곳 설립…복음전파 매진
하나님 나라 비전 품고 새 비상 꿈꿔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에 위치한 함열교회(지홍구 목사)는 얕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지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함열교회는 지난 100년 간 호남지역 최초의 성결교회로 지역사회에 성결의 빛을 밝혔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답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시대적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호남지역 장자 교회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 

평신도에 의해 시작된 교회
함열교회는 1920년 동양선교회에서 우원식 전도사를 파송하며 시작됐다. 당시 생계 때문에 강경지역을 오가던 최봉순 씨는 1917년부터 그의 어머니를 비롯해 몇 사람과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우원식 전도사가 파송되면서 1920년 11월 15일 함열 복음전도관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당시 교회설립의 주춧돌을 놓았던 최봉순 집사의 후손들은 함열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면서 현재 5대째 교회를 섬기고 있다.

복음전도관이 세워진 후 성도들의 뜨거운 신앙 열정과 헌신으로 교회는 날로 성장했다. 개척 8개월 만인 1921년 7월 11일 첫 예배당을 건축할 정도로 부흥을 이루게 된 것이다. 처음 건축된 함열교회는 132.23m²(40평) 용지에 총면적 49.58m²(15평)로 당시에는 제법 큰 규모의 단독 예배당을 갖게 되었다. 이후 함열교회는 안정된 성장을 거듭해 1921년 9월 ‘함열 복음전도관’에서 ‘함열교회’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고난 속에서도 예배 이어가
1943년 5월 24일 전국의 성결교회 목회자와 장로 등 300여 명이 일제에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고난은 함열교회에도 찾아왔다. 당시 담임목사였던 장석초 목사와 이진관 집사가 일본군에게 끌려가 옥고를 치룬 것이다. 당시 장석초 목사는 68세의 고령이었지만 재림 신앙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7개월 동안 옥중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장석초 목사는 “내가 이들에게 굴복하는 날 나는 지옥의 자식이 되리라. 죽으면 죽었지 어떻게 주님을 배반하겠는가”라며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수감생활을 했다고 한다. 함열교회 성도들도 장석초 목사의 신앙 결기를 따르며 폐쇄된 교회 대신 신자들의 창고에서 꾸준히 예배를 드렸다. 예배 시간조차 제대로 정할 수 없어서 하루에 2번, 3번씩 성도들이 모이는데로 예배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런 신앙 열정은 6.25전쟁 당시 공산군의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공산군들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교회 사무실을 점거하는 등 교인들을 내쫓았다. 하지만 성도들은 굴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예배를 드렸다. 공산군의 핍박과 협박, 갈취가 계속되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소중하다”며 일제강점기 시절 핍박을 받았던 신앙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후손들도 묵묵히 예배의 자리를 지켰던 것이다.

지홍구 목사는 “함열교회의 신앙 토대는 이렇게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신앙을 지킨 것”이라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가 후손들에게 전해졌고 지금도 신앙생활의 신념이 되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100년 동안 분열 없어
함열교회는 지난 100년의 역사 동안 분열이 없었다. 대신 총 3개의 지교회를 세우며 지역사회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특히 3번의 지교회 설립 모두 성도들을 각 지역에 파송하면서 세웠다는데 의미가 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성도들을 파송하는 분립개척의 첫 모델인 셈이다.

첫 번째 지교회는 1931년 세운 화정교회다. 화정교회는 1931년 7월 10일 함열교회에 출석하던 20여 명의 성도들이 류응현 성도의 가정에서 창립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됐다. 류응현 성도는 당시 세례도 받지 않았던 평신도였지만 자신의 밭 330.57m²(100평)를 헌납했고 이 위에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이후 화정교회는 우리교단 총회장을 4명이나 배출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지홍구 목사와 교회 장로들.
지홍구 목사와 교회 장로들.

 

두 번째 지교회는 6.25전쟁이 한창이었던 1951년 세워진 남당교회(현 익산흰돌교회)다. 도삼순 정양례 이무순 등 3명의 성도들이 함열읍 남당리에 첫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이 교회 역시 전쟁 중에도 복음의 열정으로 설립 2년 만에 예배당을 건축하는 등 빠르게 성장했다. 남당교회는 이후에도 1974년, 1989년, 1996년 교회를 재건축 하는 등 지역의 중견교회로 자리잡았다.

세 번째는 1985년 설립된 석매교회다. 당시 석매리 지역에서 출석하던 성도들은 한시간 씩 걸어서 새벽기도회를 다닐 정도로 열심이었는데 점점 노령화 되면서 교회 출석이 어려워지자 분립 개척을 결정한 것이다. 함열교회는 석매교회 개척 때 성도 121명 등 어린이 포함 150명 넘게 파송했으며 예배당을 건축 지원하는 등 현재 선교적 교회개척의 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 분립 개척을 35년 전에 이미 보여줬다.

새로운 도약과 미래 꿈꿔
올해 100주년을 맞은 함열교회의 숙제는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도약과 미래를 위한 비전을 세우는 일이다. 

신앙 열정을 지켜가면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 또한 함열교회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이를 위해 함열교회가 최근 주력하고 있는 일 중 하나는 ‘공교회성 회복’이다. 거창한 구호나 프로그램이 아닌 세상 속에서 선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함열교회 성도’가 아닌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이들의 새로운 목표이다.

지 목사는 “함열교회가 100년을 맞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믿음 위에 바로 서는 것”이라며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교회에 다닌다는 자부심과 함께 세상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100년의 역사 되새기며 주신 은혜 감사
함열교회는 지난 100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감사의 의미를 담은 다채로운 100주년 기념사업도 벌이고 있다. 코로나19로 계획했던 행사들을 잠시 미루기도 했지만 100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교인들과 기쁨을 나누는 것은 꼭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는 전임 담임목회자들을 초청해 말씀 사경회를 열었으며 6월에는 100주년 기념 임직식을 열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일꾼들도 세웠다. 오는 11월 15일에는 10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며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 비전을 선포할 계획이다. 또한 선교사 파송을 통해 해외선교의 지경을 넓힌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 밖에 100년사 발간 및 영상제작과 전교인 성경필사 등의 행사도 추진 중이다. 특히 최근에는 성도들의 성경 필사본을 예배당 현관에 전시하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홍구 목사는 “100년의 역사도 소중하지만 앞으로 열어갈 100년이 더 중요하다”며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일에 전교인과 함께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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