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이라는 책에서 보면 정의(Justice, 미쉬파트)는 주로 공적으로 특히 법정에서 옳음과 그름의 판단을 내릴 때 지침이 된다고 말한다. 또한 공의(Righteousness, 체데카)는 공과 사를 구별하지 않고 법정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행위에서 옳음과 그름을 선택할 때 지침이 된다고 했다.

21대 국회의 국정감사가 마무리되었다. 국회가 상임위별로 국정 전반에 걸쳐 고위공직자의 위법 행위와 직권 남용 및 비행을 조사, 추궁 했고, 공개주의 덕분에 우리는 생중계로 이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여, 야 국회의원이 자신은 정의롭고 상대방은 불의하다고 하는 이해의 충돌로 당사자들은 아시타비(我是他非), 견강부회로 진흙탕에서 물고 뜯는 개라는 이전투구의 싸움장이 되었고, 국민들은 후안무치, 목불인견의 볼썽사나움을 구경했다.

남북전쟁은 1861~1865년, 미합중국의 북부와 남북이 벌인 동족상잔이다. 5년간에 걸친 격전 끝에 남부는 패하여 다시 연방으로 복귀한다. 당시 남부의 리 장군은 1829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1861년 54세에 대령으로 전쟁에 참여했고, 북군의 그랜트 장군은 1843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1961년 39세에 대령으로 참전한다.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합중국의 상황을 보면 농업사회였던 남부는 면화 재배를 위해서 노예가 필요했고, 면화를 영국에 수출해야 하므로 관세가 낮은 것이 유리하지만, 제조업으로 발전했던 북부는 관세를 높여 국내의 제조업을 보호해야 하므로 이와 관련한 이해의 충돌 등 많은 문제가 얽혀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서로가 자신의 입장이 정의롭고 상대방은 불의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당시 켄터키주와 미주리주는 노예제도는 찬성하되 합중국에서 탈퇴하지 않았고, 버지니아주와 테네시주를 비롯한 11개 주들은 남부연합을 결성하고 있었다.

2015년 상영된 영화 ‘필드 오브 로스트 슈즈’(Field of lost shoes)는 남부군 버지니아 군사학교가 무대가 된다. 생도들은 학사일정을 진행하는 중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남북전쟁 중 최대의 격전지 다섯 곳 중의 하나인 버지니아 뉴마켓 전투에 생도 신분으로 참여해 공을 세운다. 그러나 단지 4명만이 살아남게 된다.

북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그랜트는 “전쟁은 이기는 것이 목적이고 승리한 자만이 파괴된 것을 치유할 수 있다. 적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있다면 모두 파괴할 것이다”라는 결기를 보이자 대통령 링컨은 그를 참 군인이라고 말한다.

뉴마켓 전투가 있기 전날 저녁 150년 동안 농장을 운영했던 집안의 자녀인 남부 버지니아 군사학교 제퍼슨 생도는 “200년 노예제도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며 신념을 불태웠고, 좋은 여자를 만나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 꿈인 샘은 “전쟁은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자리에 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를 드린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죽음의 길을 행군하는 동안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의무를 다하게 하소서. 어머니, 아버지, 형제와 자매를 위해…. 아멘”

누가 정의로운가? 대한민국 국회의 여당 의원들인가, 야당 의원들인가? 북군인가, 남군인가?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은 북부에서는 필독서였고, 남부에서는 금서였다.

우리들의 삶의 기준과 판단은 완벽하지 못해 논리적 모순과 도덕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내가 정의롭게 행하는 모습이 타인의 기준으로 볼 때는 합리적 의심의 눈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 정의롭고 공의로운가 하는 명제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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