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와 프레임의 법칙(Frame law)

       안성우 목사

오성과 한음이 예배를 드리러 가는 중인데요. 오성이 한음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생각하나?” 한음이 대답했어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목사님께 한번 여쭤보는 게 어떻겠나?” 오성이 목사님께 물었죠. “목사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목사님은 정색하며 대답했습니다. “형제여,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절대 그럴 순 없네.” 오성으로부터 목사님의 답을 들은 한음이 말합니다. “그건 자네가 질문을 잘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가서 다시 여쭤보겠네.” 

한음이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담배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드리면 안 되나요?” 목사님은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형제여,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우는 중에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관점의 틀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는 게 ‘프레임의 법칙’인데요. 동일한 현상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주님은 “광야에 무엇이 있더냐?” “광야에서 무엇을 보았느냐?”라고 묻지 않으시고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관점의 프레임을 물으신 건데요. 의도를 가지고 사물을 보는 경우를 꼬집으신 겁니다.

자신의 입장. 생각, 체험의 한계란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잔인, 무례, 분노, 자만, 오만의 갑옷으로 무장한 것과 같습니다. 잘못된 관점이나 느낌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사람과 사물의 본질을 보지 못하기 십상인데요. 리더는 매일 자신의 관점, 의식, 자기중심적인 관점을 깨고 ‘리프레이밍(reframing)’ 해야 합니다. 

주일예배가 9시와 11시입니다. 권사님 가정이 미얀마를 가는데 비행기 탑승 시간 때문에 주일 아침 7시에 예배당에서 자기 가족을 위해 주일 예배를 인도해 달라고 합니다. 허락해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겁니다.

반면에, 한 가정이 외국을 가려는데 꿈자리도 뒤숭숭해 마음이 불안하답니다. 주일 아침 7시에 자기 가정을 위해 예배를 인도해 주면 다녀와서 예수 믿고 교회에 등록하겠답니다. 왜 안 되겠어요.

사고의 틀을 깨고 리프레이밍을 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의심’입니다. 고착된 교회 내, 자기중심, 집단 이기적 관점은 아닌지 의심해야 합니다. 

배형민은 「의심이 힘이다」에서 “건축가는 해답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사는 세상만 최선이라는 걸 의심하고, 질문을 만들어 내고 그중 가능한 답 하나를 건물로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건축물이 그렇다면 인생은 더 의심해야 합니다. 의심이 없다면 의식과 관점은 점점 굳어 갑각류처럼 될 겁니다. 

의심했다면 다음 단계는 ‘해체’입니다. 잘못된 전통, 사람 중심, 돈이 이끄는 의사결정의 관행과 습속(habitus)을 따르는 프레임을 해체하는 거예요. 주님은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 가죽 부대를 버려야 합니다.

타임지 표지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는 천 장 넘게 버리는 수고를 기꺼이 한답니다. 해체는 자아, 철학, 공간, 의식, 설교, 인격, 지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칩니다. 해체에는 고통이 따르기에 피하기 일쑤인데요. 고통을 피하려 해체를 미룬다면 훗날 더 큰 고통에 직면합니다. 

다음 단계는 재구성입니다.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죠. 목회자라면 매일같이 부임이나 개척 첫날에 서는 겁니다. 사업가나 직장인은 안정과 일상의 당연함을 버리고 첫 자리에 서는 겁니다. 재구성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 내면에서부터 필사적으로 시작될 때 필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생명력, 역동성, 재창조, 혁신, 승리를 보상으로 얻습니다. 매일 구원받고 말씀 안에서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재구성은 안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실현은 안에서 밖이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입니다. 

말씀 외에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철학, 과학, 기업, 교회까지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네 빵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찾으리라”(전 11:1) 일상, 목회, 사업에 대한 의심, 해체, 재구성을 위한 도전을 권합니다.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자유(관용)를, 모든 일에는 자비(사랑)를!” 본질, 하나님의 말씀만 남기고 모든 일에 관용과 사랑으로 틀을 짜면 여러 날 후에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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