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성경묵상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여전히 어수선하다.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 소위 뉴노멀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이전의 삶을 그리워해야 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아무튼 현재로서는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상황에서 자주 떠오르는 성경말씀이 로마서 8장 18절 이하의 구절이다.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한다”(22절)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고 고통 받는 상황에서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26절) 그럼에도 위로가 되는 것은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피조물의 고통과 한숨은 성도의 탄식과 절규가 되고, 이는 곧 하나님의 영의 기도가 된다. 하나님의 영은 피조물과 교회의 탄식과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품어 안으신다. 

코로나19와 같은 재앙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늘 누구의 잘못 때문인지를 생각한다.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에겐 면죄부를 부여하는 버릇이 아담의 후손들에겐 늘 내재해 있는 것 같다.

오늘날 자연적 재앙들은 ‘자연악’(malum physicum)이라고 말하기엔 전혀 자연적이지 않는 것이 많다. 기후변화로 인한 온난화, 잦은 태풍의 출몰과 유난히 긴 장마, 그리고 코로나19. 그 무엇을 예로 든다고 해도 인간의 행위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연과 인간은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고 성경은 이미 말하고 있지 않았는가.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 있는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창6:11~12) 땅의 부패와 도덕적 행위의 부패가 직결된다. 특정인이 아니라 ‘모든 혈육 있는 자’의 부패가 문제였다. 

코로나19로 인해 다시금 성경 말씀을 곱씹게 된다. 누구의 탓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탓이며, 이는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인간의 부패와 포악함이 자연재앙을 부르고 있는 것 아닌가.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생태백신’이란 개념을 소개했다. 자연을 돌보는 것이 곧 인간을 돌보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 역시 이미 성경에서 가르쳐 준 말씀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후에 주신 창조명령이다.

여기서 ‘정복’이나 ‘다스림’의 개념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혼돈과 무질서를 정복하여 생명이 움트고 살아갈 수 있게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 이전에 창조된 자연이 먼저 복을 받았다.(창1:22)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하나님의 복이 지속될 수 있도록 자연을 돌보고 관리하는 복된 직무를 맡았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가 남용되고, 침범하지 말아야 될 자연의 경계를 인간이 파괴했다는 이야기를 성경을 통해 알고 있다. 그 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가.

누구의 탓이 아니다. 인류 전체가 한 사람 아담이 되어 태초의 범죄를 계속 되풀이 한 결과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롬 8:19)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던 그 아담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하나님이 복 주신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아담의 재등장, 그것이 피조물의 희망이다. 

코로나19로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건강에만 집착한다. 하지만 지금은 진정, 자연의 건강을 생각해야 할 때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곧 나와 이웃의 생명을 해치는 일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