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신앙의 균형

 

    하도균 교수
    하도균 교수

기독교의 핵심 진리들을 연구하고 묵상하다 보면 깨닫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신앙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각자가 받은 은사대로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균형을 이루어야 신앙의 거장이 되어 갈 수 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것만 추구하는 사람들을 기독교 신비주의자라고 말합니다. 신비주의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기독교 신비주의의 고전을 쓴 토마스 아 캠피스가 주장하는 핵심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며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신앙에서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강조하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같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균형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같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보자면, ‘온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균형 잡힌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40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구약에 있는 모든 율법을 요약하면,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사랑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야 합니다. 세상에 흘려 내보내야 합니다. 내가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였다면, 세상에 사랑을 흘려보내는 일이 십자가를 지는 일처럼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그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있으면 능히 할 수 있습니다. 그때 균형 잡힌 사랑, 온전한 사랑이 가능한 것입니다.

혹시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지 모르겠습니다. 또는 당장 실천할만한 힘이 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 없다면 기독교는 이상한 종교가 되고 맙니다.

제가 생각할 때,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타적인 기독교가 이기적인 종교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아야 하고, 내가 은혜받아야 하고, 내가 은사받아야 하고, 모든 것이 ‘나’ 중심으로만 돌아갑니다. 순서적으로는 옳습니다.

먼저 내가 구원받아야 하고, 먼저 내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받은 사랑과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야 합니다. 내가 받은 은사로 다른 사람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사님들을 참 존경합니다. 그리고 선교지로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전도하면서 몸부림치는 그리스도인들을 존경합니다. 이것이 형제 사랑의 가장 모범 되는 사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양화진에 가보셨나요?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신 선교사님들이 이름도 빛도 없이 그곳에 묻혀 있습니다. 그 선교사님들의 일기들을 읽다 보니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느 한 선교사님이 한국의 신자들을 심방하러 갔다 왔는데, 자기 아이가 열이 나서 아픈 것을 놔두고 갔다 왔더니, 아이가 죽어 있는 것입니다. 남의 나라 백성은 살리고, 자기 아이는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형제가 자라서, 부모님이 복음을 전하시던 이 나라에서 대를 이어 선교하다가 이 땅에 자기 뼈를 묻습니다. 이것이 인간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선교사님들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채워진다면,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영혼들을 섬기고 살리며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나그네처럼 한평생 사는데, 주를 위해 살기 원합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살 수 있기 원합니다. 작은 예수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며 살기 원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보다,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일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전한 사랑을 보여주셨기에 이제는 우리가 이 세상을 향해 온전한 사랑을 보여주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안아주세요. 남편을 안아주세요. 아내를 안아주세요. 그리고 아이들도 안아주세요. 신앙의 균형을 이루며 살기위해 노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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