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자 신영복은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황폐화”라고 지적하며 그 예로 지하철에서의 자리양보를 들었다. 그가 잘 아는 젊은이에게 물었다. 이 지하철을 만든 이가 바로 저 노인들인데 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느냐고.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자기가 월급 받으려고 만들었지, 우리를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신영복, 「강의」)

▨… 신영복이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모습을 인간관계의 황폐화로 규정한 것은 그 다운 진단이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의 황폐화의 예가 지하철의 자리 양보 정도라면 아직 절망할 단계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노인들은 지하철의 자리 정도를 양보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삶을 붙들고 씨름할 이유를 더 이상은 찾을 수 없기 때문 아니겠는가. 

▨…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인구 고령화 1위,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가령 노인 빈곤율이 49.2%인데, 이는 OECD 평균(12.4%)의 3배가 넘는다. 또한 우리나라 인구 10만명 당 노인 자살률은 2000년 43.2명에서 2010년 80.3명으로 10년 사이에 거의 두배로 늘어났고 이는 OECD국가 평균(13.3명)을 압도적으로 상회한다.”(정수복, 「사회를 말하는 사회」)

▨… 조금 과장된 결론일까. 우리 사회는 노인들에게 삶을 포기하게 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닌지 정수복은 묻고 있다. 2025년이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데 노인 빈곤율은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기초연금 지급으로 앞가림은 하고 있지만 노인에 대한 공적지출 비율은 2.2%로 OECD평균(7.7%)에도 훨씬 못 미친다. 이 나라는 한마디로 노인이 된다는 것은 노인의 잘못이니 어쩔 수 없다고 두 손을 들고 있는 형국이라면, 과언일까. 

▨… 1990년 제45차 유엔 총회가 10월 1일을 국제노인의 날로 정하자 1997년 이 나라는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10월 한 달은 경로의 달로 지정했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이라도 하는 사람은 극소수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성서는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하였으며 노인의 지혜와 바른 판단, 견고한 믿음을 본받으라고 일러주고 있다. 노인이 제 일을 할 수 있을 때, 교단은 발전할 수 있고 교회는 제자리를 지킬 수 있다. 초고령사회는 노인의 인력화를 요구할 것이다.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감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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