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와 에너지 발전소

      안성우 목사
      안성우 목사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피로사회」에서 자본주의가 세련되게진화하면서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패러다임이 전환됐다고 말합니다. 진화한 자본주의를 사는 현대인은 ‘할 수 있다’는 과도한 긍정에 뿌리박은 성과주의의 주체가 되어 과거보다 훨씬 효과, 효율,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한다고 합니다.

한동안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의 심리학을 재해석한 긍정의 신학이 키워드가 됐는데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구호였죠. 이런 이유로 크리스천은 훨씬 더 피곤한 삶을 스스로 강제하기도 했습니다.

전력 사용량이 공급량을 초과해 대규모 정전사태에 이르는 것이 블랙아웃인데요. 일단 블랙아웃이 되면 천문학적인 경제 손실은 물론 국가 멈춤 사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신체, 정서, 영혼도 블랙아웃이 생깁니다. 에너지가 고갈될 때인데요. 몸과 정서가 위험 신호를 보내는데도 무시하면 일시에 멈추게 됩니다. 리더의 블랙아웃은 개인, 가정, 공동체를 통째로 날려 버리기도 합니다. 

열정과 일중독은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난, 실패, 고통, 열등감은 열정이란 가면을 쓰고 일중독으로 유혹합니다. 초기에는 큰 성과를 내지만 정상에 서면 숨은 그림자가 얼굴을 내밀고 얼토당토않은 일로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엘리야는 850인의 우상 숭배자와의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이세벨의 한마디에 무너집니다. 담대했던 영적인 리더가 초라하기 그지없는 자리까지 내려가죠. 말이 기적이지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것을 먹고 생명을 부지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내 생명을 취하소서”라는 끔찍한 말까지 합니다. 

영성의 블랙아웃을 막으려면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주범을 가려내야 하는데요. 원하지 않는 일, 만나기 싫은 사람과의 피할 수 없는 관계, 고객의 과도한 기대, 무례한 사람, 일중독, 마지막으로 자기 의입니다.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고 일상을 회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요. 고갈되기 전에 충전을 해야만 일상이 유지됩니다. 

에너지를 충전하는 비결을 꼽자면 첫째, 적당한 휴식과 운동입니다.

둘째, 건강한 가족관계인데요. 때론 가족이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주범이기도 하지만 사랑의 돌봄과 나눔은 최고의 에너지 충전 요소입니다.

셋째, 은사에 합당한 일입니다.

넷째는 건강한 취미와 여가활동입니다. 특히 리더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자신에게 묻고 한 가지는 누리는 것이 좋습니다.

누군가 당신의 취미 활동이 정서와 문화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 즐거움을 포기함으로 더 많은 영혼이 실족할 것이라 부드럽게 말해주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는 정기적으로 정신과 의사를 만났는데요. 의사는 빌이 지친 것을 알았습니다. 빌의 기억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를 물었는데요. 어릴 때 아버지와 요트를 즐겼던 일이었습니다.

의사는 요트를 권하자 빌은 “제가 요트를 하면 내일 지역 조간신문에 범선을 샀다고 실릴걸요”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의사는 요트를 탐으로 잃는 사람보다 요트를 하지 않아서 잃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했고, 빌은 정기적으로 요트를 탑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감입니다. 말씀묵상과 기도, 영성 일기쓰기를 추천합니다. 독서와 달리 글을 쓴다면 이미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쓴 글을 모아 누구에게 읽히지 않을 책이라도 한 권을 내 보면 지식 저장고와 에너지 발전소가 얼마나 비었는지 알게 되죠. 한걸음 뒤에서 영적인 상태와 하나님과의 거리가 어떠한지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무엇으로 언제 어떻게 채울 수 있습니다. 혹자는 영성보다 몸이 먼저라고 하는데요. 건강해야 기도, 예배, 독서, 섬김을 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무엇이 우위랄 것 없이 통섭의 관점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에너지 충전을 위한 원칙들을 지켜나가는 것은 경건에 이르는 연습처럼 반복이 필요한데요. 탁월한 리더는 충전을 위한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을 우선순위에 둡니다. 리더의 에너지는 공동체와 구성원의 에너지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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