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은 죽은 아내를, 아들은 죽은 부모를, 어미는 죽은 자식을 안은 채 하염없이 걸었다. 사람들은 이 행렬을 ‘눈물의 여로’라 부른다. 하지만 죽음의 행진은 절대 낭만적일 수 없다. 과연 누가 어미의 팔에 안긴 채 뻣뻣하게 죽어있는 아기, 어미가 걸어가는 동안 감기지 않은 눈으로 흔들거리는 하늘을 노려보고 있는 아기를 소재로 시를 지을 수 있겠는가?”(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 들」)

▨… 1838년 5월, 미국 애팔라치아 산맥 아래 뉴 에코타계곡에 모여 살던 1만5000여 명의 체로키부족은 윈필드 스콧 장군 병사들에게 포위되어 임시수용소에 강제수용되었다. 그해 10월 겨울이 시작될 무렵, 체로키족은 군대의 포위 속에 1400㎞ 행진길에 내몰렸다. 추위와 전염병으로 약 4000명이 그 길에서 죽었지만, 매장을 사흘에 한 번만 허락해 죽은 자를 끌어안은 채 행진해야 했다. 체로키족 보호구역 오클라호마에 이르기까지 체로키인들의 무덤은 계속 이어졌다.(하워드 진·앤서니 아노브,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 미국사회에서도 목사는 만만했던 것일까. 체로키족의 강제이주는 위헌이라고 날을 세워 반대한 새뮤얼 워체스터 목사는 조지아주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강제이주는 위헌이란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석방되지 않았다. 그에게 체로키어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배운 체로키인들은 시신을 묻을 때마다 그 찬양을 함께 불렀다.

▨…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행진은 40년, 체로키인들의 강제이주 눈물의 여로는 6개월이 소요되었다. 코로나로 하나님의 성전이 흔들리는 사태에 온몸을 던져 맞서야 하는 하나님의 종들의 눈물의 여로는 언제쯤이면 종착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성전이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의 진앙인 것처럼 손가락질 당하는 수모를 언제까지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 워체스터 목사 만큼 아니, 그 이상 괴로움 당하고 있다면 과언일까.

▨… 총회장이 ‘코로나 극복 100일 정오 기도’를 선포했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힘든 현실을 넘어서는 비전과 소망을 발견하며 이 시대 그리스도인의 역할과 책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100일 정오 기도의 목표를 밝혔다. 체로키인들이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아픔을 위로 받았다지만 성결인 종들은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라면 100일아니라 1000일이라도 엎드릴 것이다. 한 마음으로 성결인의 힘을 드러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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