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가. 돌아가신 아버님 그리울 때마다 우리 형님 쳐다 봤지. 스스로 두건 쓰고 도포 입고 가서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네.” 이 시는 열하일기, 허생전, 연암집 등으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린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지원의 ‘연암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하며’(燕巖憶先兄-연암억선형)의 한글 역이다.

▨… 박지원의 성품이 강직하고 근엄하여 웃는 일이 없으므로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덕무는 “그가 웃으면 황하수가 맑아질 것이다”고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덕무는 이 시에서 죽은 형을 그리워하는 박지원의 애틋한 마음을 공감할 수 밖에 없어 이 시를 극찬했다고 한다. 오랜 감옥생활을 겪은 인문학자 신영복도 “형제간의 정한을 쉬운 언어로 풀어내 진정성의 공감이 있는 시”로 감동시켰음을 지적해 주었다.

▨… 돌아가신 형님을 그리워하는 박지원의 마음은 물질만능의 기술문명시대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감정의 낭비로 비난받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는, 과학기술문명이 아무리 급격한 발전을 이루어 인간이 지켜온 가치체계를 뒤흔들어 놓는다 하더라도,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그리워하는 정리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이명직을, 이성봉을, 문준경을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기리려 할 것이다.

▨… 우리 성결교회는 교단창립에서 오늘까지 역사는 길지 않지만 우리가 마음으로 기리고 그리워할 사람들은 많이 허락받았다. 이것이 무엇보다 우리 성결교회의 내일이 밝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여기에 그 이름을 일일이 기록할 수는 없지만 우리신문 자체적으로는 “일화로 엮는 성결교회 이야기”를 통해(현재 1015회) 그 이름을 발굴해내고 있음을 밝혀두고 싶다. 물론, 우리신문이 찾아내지 못한 이름도 수없이 많음은 전제되어야 한다.

▨… 지난 6월 한국성결신문은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코로나19의 팬데믹 현상 때문에 창간30주년 기념예배조차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창간 이후 30년 동안 어려운 길을 걸어온 한국성결신문을 위해 아무런 대가없이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기꺼이 드린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자 한다. 본지가 존속하는 한, 그분들을 기리도록 노력할 것이며 그 고난의 세월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한국성결신문을 위해 이름없이 빛도 없이 헌신한 모든 이를 향한 그리움은 연암억선형을 닮고 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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