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는 독별(獨別)하다! “ dovxa”

“하나님께 영광(榮光, doxa)을 돌립니다!”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말하거나 가장 많이 듣는 신앙용어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현실은 정말 그런가?

영광이란 말은 영예나 명예의 빛을 뜻하는 말이다. 만사(萬事)가 형통하고 잘 되는 일의 형국을 나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다른 존재, 곧 하나님에게 돌린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고백이다. 우리는 겉으로는 올바르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즉 나의 억견(臆見, doxa)을 포기할 때 하나님께 진정한 영광을, 명예를, 아름다움을 드리게 되는 것이다. 자기 소유, 자기 신념, 자기 능력, 자기 생각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고백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도 말로 그치고 신앙 행동은 여전히 그 영광의 몫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doxa는 인간의 거짓된 억견(짐작), 억측으로 그치고 만다. 이는 그 어원을 살펴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영광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dovxa”(독사, 신약성서에 166번 등장)는 히브리어 ‘카보드’(kabod)를 번역한 것인데, 원래 이 말은 ‘무거움’, ‘무게’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옛날에는 대개 무거운 쇠붙이가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dovxa”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품고 있었다. 고대철학에서 ‘독사’는 참된 인식을 일컫는 에피스테메(episteme)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의견(意見), 사견(私見), 속견(俗見), 억견(臆見)을 뜻하는 용어였다.

‘독사’의 일차적인 의미는 “겉모습을 지니다”, “…인 것처럼 보이다”는 뜻을 가진 동사 dokeo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인 것처럼 보이거나 믿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즉 진리, 옳은 것, 아름다운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함의를 지닌 ‘독사’가 후대 신약시대에서는 좋은 ‘명망’이나 ‘평판’, ‘명예’나 ‘영광’이라는 의미로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요세푸스와 필로의 작품들에서 그 개념이 명예, 영광, 광채, 신적 광휘로 사용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한자어가 잘 표현하듯이, ‘독사’는 빛이(光) 꽃처럼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이다(榮).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의 감각적 지식에 의존하여 나타난 겉모습만을 보고 사건들을 짐작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를 간파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모든 사건, 행위, 일의 결과는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 하나님께서 친히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도 바울의 놀라운 혜안이 있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신 일은 결국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하신 일이라는 점,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doxa를 나의 것으로 삼았던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이 바로 doxa가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독사)을 오히려 나의 몸에 가득 채웠던 우리 인생은, 그것이 참된 영광인 줄 알고 살았지만 실상 그것은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가는 거짓 독사였던 것이다.

이제 교회력으로 오순절(pentekostes)이 다가오고 있다. 이 절기는 칠칠절(출 34:22; 신 16:10), 맥추절(출 23:6),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민 28:26)로 불리는 날이자, 유월절 중 누룩 없는 떡을 먹는 둘째 날부터 기산하여 50일이 되는 날에 보리와 밀을 수확하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축제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로, 그리스도인들은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여 교회가 탄생한 날로 기념하는 성령강림절이기도 하다. 우리 성결교회는 전통적으로 성령의 은사를 중요시하여 오순절의 뜨거운 성령 체험을 강조해 왔다.

이번 성령강림절은 하나님의 성령을 듬뿍 받아 하나님의 영광 보다는 나 자신의 영광을 누렸던 과거, 하나님보다 내가 더 높아졌던 신앙, 나의 이름이 나의 섬김이 나의 신앙 경력이 더 빛을 발했던 세속적 ‘독사’를 버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 ‘독사’가 내 것 인양 가상(假象)하지 말고, 철저히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귀한 절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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