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조가 그리운 때, “ ovmoouvsioz” 호모우시오스

작을 글자 하나 때문에 개인이나 시대의 운명이 뒤바뀐 사건이 종종 있다. 최근 영국에서 잘못 보내진 문자의 철자 하나로 오해가 발생해 이웃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친구에게 mutter(웅얼거리다)라는 문자를 보내려다 실수로 nutter(얼간이, 미치광이)로 찍혀져 분노한 상대방이 그 사람을 살해했던 것이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선포하셨다. 이 구절에서 ‘일점’이라 번역된 헬라어는 사실 헬라어 알파벳(24개) 중 가장 작은 철자인 ‘이오타(i)’이다. 기독교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논쟁의 분수령을 이루었던 삼위일체 교리 역시 이 ‘이오타(i)’ 철자 하나와 얽혀 일어난 사건이었다.   

기원후 325년 5월 소집되어 3개월 여 걸쳐 열린 회의가 있었다. 바로 ‘니케아 공의회’(Councils of Nicaea)이다.  동서방에서 318명의 주교들이 참석한 회의 안건은 당시 리비아 출신으로 알렉산드리아 지역의 바우칼리스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아리우스(Arius, 250~336)에 대한 이단적 견해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아리우스파는 이단적 혐의가 있다고 보았을까? 니케아공의회에서 최대 쟁점이 되었던 사항은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문제였다. 이 삼위일체 논쟁에서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여 예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닌 ‘신의 피조물 중 최고이자 으뜸인 존재’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즉 성부와 성자는 ‘유사하다’는 유사본질(호모이우시오스 ovmoiouvsioz)론을 주장하여 많은 추종자들을 얻게 되었다.

이에 맞선 이는 30세의 가장 어린 나이로 공의회에 참석한 알렉산드리아 감독의 비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였다. 그는 성부와 성자는 본질에 있어 완전히 ‘동일하다’는 동일본질(호모우시오스 ovmoouvsioz)론을 강력히 주장했다. 전자는 ‘유사한’, ‘비슷한’이라는 뜻의 헬라어 ovmoi(homoi)와 ‘본질’을 뜻하는 ouvsiva(ousia)가 결합된 합성어인 반면에, 후자는 ‘하나’를 뜻하는 ovmo(homo)와 ‘본질’을 뜻하는 ouvsiva(ousia)가 결합한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개념 사이에는 단 하나의 그리스어문자 ‘이오타’(i)가 첨가되었느냐 안 되었느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인데, 엄청난 의미 변화를 초래하였다.

결국 진리 수호에 목숨을 건 아타나시우스의 맹활약으로 참석자 중 20여 명만이 아리우스의 신학적 입장에 동조했을 뿐,  호모이우시오스(유사본질)이냐 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이냐의 논쟁은 아타나시우스의 승리로 끝났다. 아리우스파는 교회사상 최초의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고 공의회는 “동질적이고 하나의 실체로 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니케아신경’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오직 한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니, 모든 세대에 앞서 성부로 부터 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빛에서 나신 빛이시오,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동일본질(homoousios)이시며…”로 기록되어 있다.

몇 년 후 니케아의 영웅 아타나시우스는 젊은 나이에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이 되었지만 그의 생애는 끝없는 정치적 모함과 반복되는 추방과 도피, 은거와 유배로 20년 가까운 세월을 유리걸식하면서도, 이단을 배척하고 예수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니케아신경을 가슴에 품고 마지막까지 진리를 위한 불굴의 투쟁을 쉬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역사에서 ‘전통신앙의 아버지’라는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그가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한 가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라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포스트모던사회라고 일컫는다. 교회들 속에 새로운 신흥종교나 이단들이 침투해 심각성을 느끼고 대책을 마련하느라 저마다 고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혼탁한 시대에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를 위해 글자 하나에 자신의 신앙과 생애를 걸어 이단을 타파하고 정통신앙을 고수했던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새삼 뼈저리게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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