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라게의 봄을! “ katallanhv”

성서를 읽다보면 간혹 우리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단어나 구절들이 눈에 띈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 우리를 감동시켜 신앙을 반성토록 하거나 어느 경우에는 그 개념이 계속 우리 삶의 화두로 남아서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중압감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고린도후서 5장 20절의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구절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진중한 울림이 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말은 ‘화목’이라는 개념이다. 이 독특한 단어는 ‘화해’라고 번역하는 것이 헬라어 원문에 더 가깝다.

‘화해’를 의미하는 헬라어 원어는 “카탈라게”katallanhv)인데, 신약성서에서 사도바울만 이 용어를 4번 사용하며(롬 5:11,15; 고후 5:18,19), 그 동사 “카탈라소”(katallasso)는 6번 사용된다(롬 5:10[2번]; 고전 7;11; 고후 5:18,19,20). 어원학적으로 카탈라게는 ‘완전히’라는 뜻의 “katav”(kata)와 ‘변화하다’, ‘변경하다’, ‘교환하다’는 뜻의 “ajllavssw”(allasso)가 합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용어의 어원적 뜻은 ‘양자 간에 불편했던 관계가 어떤 대가를 서로 교환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변화되어 그 불편했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는‘Reconciliation’이다. 고대그리스의 결혼문서들을 보면, 결혼한 부부의 별거를 ‘아팔라소’(apallasso)라 부르며, 그들이 다시 합친 화해를 ‘카탈라소’라고 기록했다. 이러한 전승을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11절에서 별거한 아내는 ‘그 남편과 다시 화해하도록 하라(카탈라소)’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강조하는 화해란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되돌릴 수 없는 단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 및 세계와 완전히 다시 화해하셨다’는 뜻이다. 즉 화해란 죄 많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호의로 변해서 완전히 적의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화해란 분리에서 진정한 관계의 회복을 의미한다. 우리의 반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히 극복되어진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화해와 교환되어 궁극적으로는 죄가 제거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 땅에 내려 오사 십자가의 찢기심으로 우리와 화해하셨다. 그 하나님께서 십자가상의 눈물로 아니 핏빛으로 오늘 “우리에게 화해(카탈라게)의 직분을 주셨다”(고후 5:18).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사라지는 것이니,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을 뜻하는 ‘화목’(和睦)이라는 번역어보다 ‘싸움하던 것을 멈추고 서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앰’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화해’(和解)가 헬라어 원어에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교회생활이나 신앙언어에서 화목보다는 화해로 바꿔서 표현하면 그 원문의 뉘앙스를 잘 살릴 수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그리스도인이 정말 화해의 신앙에 걸맞은 지속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진정 이웃과 막힌 담이 있다면 예수 십자가를 생각하며 마음을 찢어, 억울함을 찢어, 물질을 찢어 서로 화해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다리를 만드는 삶인 것이다.

특별히 바울은 이러한 삶을 ‘화해의 직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화해하는 그 행동 속에는 진정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다. 아니 하나님께서 친히 그 마음속에 좌정해 계시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화해의 역사이다. 그러니 이웃과 카탈라게 하십시오! 하나님과 더불어 카타라게 하십시오! 집단간, 계층간, 세대간, 성별간, 인종간, 정파간, 교파간 서로 분열과 대립, 그리고 갈등으로 얼룩져 있는 한국사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화해의 손길이…

입춘이 되면서 집집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써 붙인 곳이 많이 눈에 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봄맞이는 화가여생(禍家餘生)하지 말고 화이부동(和而不同)하면서 화풍난양(和風暖陽)을 기원해야 할 것이다. 총선 무엇보다 갈등과 긴장으로 정치경제적 피로감이 쌓인 한국사회를 화해의 무드로 이끌 수 있는 인물을 뽑으면 어떨까. 4월 선거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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