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딛고 사회복지 전문인으로 변신
은혜 체험 후 소명 받아 … 치매·중풍노인, 장애인활동 지원사역 펼쳐

인생에서 만난 절망과 고난을 이기고 사회복지 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성결인이 있다.

오순곤 장로(부산백합교회·사진)는 부산 연제구에서 설리번 요양보호사교육원, 재가장기요양센터 및 장애인활동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치매·중풍 등 몸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양성과 노인복지·장애인 활동지원에 나서고 있다.

교육원과 센터 이름에 ‘설리번’을 넣은 것은 47년간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한 헬런켈러의 손과 발이 되었던 ‘설리번’ 선생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빛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오순곤 장로는 교육원과 센터 운영 전부터 부산의 교육계와 정가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제2대 부산시의회 운영위원장과 전국 시도의회 운영위원장협의회 회장으로 부산시 행정의 맥을 짚으며 명성을 날렸다. 그런 그가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 사회복지 요양분야 대학교수로 후진양성에 힘쓰고 노인복지 발전을 위해 헌신하기까지 눈물어린 간증이 있다.

오 장로는 지난 92년부터 98년까지 부산에서 손꼽히는 유명 입시학원을 운영하면서 교육계에 몸 담아 오던 중 94년 부산시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인으로써 새 길을 걷게 됐다. 초선의원으로 부산시의회 운영위원장과 전국 시도의회 운영위원장협의회 회장까지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정치와 더불어 학원을 경영하며 생활이 어려운 학생 300여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지역의 소외이웃을 남몰래 돕는 등 선행에 앞장섰던 오 장로는 어느 날 찾아온 고난 앞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98년 4월 그가 운영하던 입시학원이 세무사찰을 받고 세금포탈 등의 혐의로 영업이 정지된 것이다. 주변에서는 대선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모 정치인을 그가 지원했다는 이유로 정치보복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학원운영이 어렵게 되자 결국 부도를 맞았고 순식간에 빈털터리로 전락했다.

큰 충격과 절망 속에 남은 것은 신앙뿐이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매일 새벽예배 후 아내와 함께 버스를 타고 김해의 어느 기도원을 찾아 기도와 예배에 집중했다. 밥 사먹을 돈이 없어 물 한 바가지로 허기를 달래던 날도 많았다. 그렇게 4년 6개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환상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새 소명을 받았다. 기도 중 환상을 보는 데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산길을 올라 어느 요양원 건물에 들어서니 치매환자들이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이끌려 간 곳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실이었다.

순간 ‘저게 내가 할 일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재기를 꿈꾸기에는 현재 모습이 너무 초라했다. 머뭇거리는 그에게 곧 바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내가 하겠다’는 음성을 들려주셨다.

새 비전을 받고 고민하던 오 장로는 기도원에서 자신의 특별한 체험을 간증하게 됐고 그의 간증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대학원 입학금을 헌금해 그에게 전달했다.

하나님의 도움과 여러 사람들의 기도와 후원이 이어져 부산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그에게 20년 전 제자가 찾아와 모 대학의 시간강사 자리를 부탁했고 6개월 뒤에는 전임강사로 대우가 올라갔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오 장로는 2008년 3월 요양보호사교육원을 개설하고 그해 6월 재가장기요양센터 운영에 들어갔으며 지난해에는 장애인활동지원센터를 만들어 사회복지 요양분야 최고 전문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오 장로는 또 2월에 열리는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 총회에서 지금까지 예장통합과 합동, 고신이 도맡았던 대표회장직에 첫 성결인 장로로서 선출될 예정이다. 교단 안에서는 성결원 이사로서 전문인의 경험을 살려 성결원 운영에 일조하고 있다.          

오순곤 장로는 “지금도 아내 손을 붙잡고 새벽기도회를 갈 때마다 찬송을 부르면 힘들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며 “내가 받은 은혜와 소명으로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돌보고 섬기는 일에 가진 전부를 다 쓰고 싶다”고 헌신된 마음을 드러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