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강신찬 목사, 병마 딛고 선교하는 목회 펼쳐
고 김일환 장로, 교회·교단 위한 헌신의 삶

교단을 위해 헌신한 전 총회장 강신찬 목사(부평제일교회 원로)와 전 부총회장 김일환 장로(북교동교회 원로)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일평생 폐질환으로 고생하면서도 목회와 선교에 전념했던 강신찬 목사가 지난 12월 7일 76세로 소천했다. 강 목사의 천국환송예배는 9일 부평제일교회에서 교단장으로 엄수되었다. 김종웅 목사의 집례로 시작된 이날 천국환송예배(발인 예배)는 경건하면서도 고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추모가 가득한 고별예배였다.

부총회장 이경우 장로의 기도와 강 목사의 불사조 같은 삶과 신앙을 노래한 연합성가대의 추모의 찬양에 이어 전 총회장 이정익 목사가 설교했다.

이정익 목사는 “강 목사님은 가시가 많았던 사도 바울 처럼 폐기능이 좋지 않아 평생 숨쉬는 것조처 힘겨워 했지만 복음전도와 선교에는 열정이 넘치는 분이셨다”고 말했다. 이병돈 목사도 조사에서 “40대에 객혈을 하고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면서도 청년처럼 설교했으며, 호랑이처럼 무서운 선배였지만 어려운 후배들을 가장 먼저 돕는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었다”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강 목사는 폐결핵 등 고난 속에 살았지만 선교의 꿈을 잃지 않았다. 유복한 가정에 태어났지만 부모의 도움 없이 강릉 성덕교회를 개척하고 강릉교회 등 고향에서 목회에 성공했지만 안주하지 않고 인천으로 올라와 부평제일교회를 선교중심적인 교회로 부흥시켰다.

그는 평소 “선교는 남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고, 교회를 세우고 목회자를 세우는 것이 두 번째 선교이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 세 번째 선교”라고 강조하며 교단 해외선교위원회를 창립하는데 앞장섰고, 초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국내외에 교회를 세우고, 특히 어려운 목사들을 돕는 일에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퇴직금으로 받은 2억원도 성덕교회 건축헌금으로 바쳤다. 교단 총회장으로 교단의 발전에도 헌신했다. 무엇보다 기성, 예성의 교류의 물꼬를 트는데  공헌했으며, 기독교서회 이사장 등 연합사업도 앞장섰다.  

예배 이후 고 강신찬 목사의 유해는 고향인 강릉 청솔공원에 안장됐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눈발이 흩날렸다.전부총회장 김일환 장로 장례예식은 12일 오전 10시 김 장로가 오랫동안 장로로 헌신적으로 사역해 온 목포 북교동교회에서 유가족과 지인, 교단 및 지방회 인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장례예식은 교단 총무 우순태 목사의 사회와 부총회장 이경우 장로의 기도, 총회장 주남석 목사의 설교에 이어 서기 조재수 목사가 약력을 소개하였고 전 부총회장 서병하 장로, 정종득 목포시장의 조사, 김장성 장로의 조가, 전 총회장 이만신 목사가 축도했다.

총회장 주남석 목사는 “김 장로님은 교회와 지방, 교단을 위해 많은 일을 감당하셨으며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우리를 맞이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천국의 소망을 품는 성도들이 될 것’을 부탁했다. 이어 서병하 장로가 눈물의 조사를 통해 고 김일환 장로와의 추억을 회고하며 “교회와 교단을 위해 헌신하시는 모습을 존경한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고 김일환 장로는 전남 해남군 산이면에서 출생하여 1947년 북교동교회에서 집사로, 62년 장로로 장립받았으며 75년 제30회 총회 장로부총회장으로 교단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이후 전국장로회장, 유지재단과 서울신학대학교 이사 등으로 헌신했다.

특히 김 장로는 붓을 사용하여 한문과 한글로 총 7권의 성경을 필사, 1권은 북교동교회가 해외에 개척한 단둥교회, 또 다른 한권은 이명직 목사 기념사업회등에도 전달하였으며 자녀들에게도 1권씩 전달하여 ‘말씀 중심의 신앙’을 권면했다.

고 김일환 장로의 시신은 예배 후 운구되어 고향 선영에 안장되었으며, 유족으로는 장남 김용기 집사를 비롯해 6남 2녀가 있고 김문기 목사(평택대교수, 삼남), 김명기 목사(팔복교회, 사남). 박승엽 목사(신안수정교회, 사위) 등이 목회자로 교단을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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