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은총의 복음, ‘qerapeiva’(테라페이아)

사회가 산업화되고 급변할수록 사람의 육체는 물질과 기계 문명의 노예가 되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수많은 질병들로 고통을 겪는다. 게다가 내면적인 정신과 자아에도 병이 들어 정신분석학적 임상이 필요한 환자들이 많이 발생한다. 성결교회의 전도표제인 사중복음 중에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전인적으로 치유하는 하나님의 역사, ‘신유’(神癒, divine healing)가 있다.

안타깝게도 신유라는 낱말 자체는 성경에도, 우리말 사전이나 성경대백과사전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자어로 신유는 ‘나을 유(癒)’를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질병이나 연약함을 치유해 주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신유에 대한 헬라어 어원을 신약성서에서 찾고자 할 때 특별히 두 단어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로, 신약에 26번 등장하는 ‘ivaomai’(이아오마이)가 있는데, 그 의미는 병을 ‘고치다’, ‘치료하다’이다. 고대 헬라어에서 이 동사는 거의 독점적으로 의학적인 용어로만 사용되었지만, 신약성서에는 병을 치료하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둘째로, 신약성서에서 ‘ivaomai’보다 더 흔히 언급되는 단어 ‘qrapenvw’(테라퓨오, 43번 등장)는 ‘병을 고치다’, ‘치유하다’, ‘섬기다’, ‘봉사하다’ 등으로 번역된다. 이 단어의 원 의미는 신을 섬기는 제의적 봉사를 포함하여 다양한 종류의 돌봄이나 섬김, 봉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신약성서에는 이 단어를 차용하여 치유하다, 회복케하다, 병을 고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단순한 의학적 처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께서 가져다 주는 진정한 치유를 의미한다.” 특히 하나님 나라의 도래, 인간 존재의 모든 영역, 즉 영적, 정신적, 감성적 영역에 대한 예수님의 권세를 상징할 때 자주 쓰던 말이었다.

이 동사의 파생 명사는 ‘qerapeiva’(테라페이아, 신약성서에 3번 등장)이며, 그 의미는 치유(눅 9:1, 계 22:2), 섬김, 봉사, 종(눅 12:42)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영어가 바로 therapy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 우리 교단에서는 “신유”라는 명사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를 ‘qerapeiva’로 써야 할 것이다.

초대교회 이래로 ‘테라페이아’는 ‘ministerium’(미니스테리움) 즉 ‘교역’(敎役)으로 번역되었다. 신유 혹은 치유의 행위를 목회 사역의 일부분으로 본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병약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봉사자(therapon)로 여기시고(마 4:24, 8:7, 막 1:34, 3:10, 눅 14:3), 그 치유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 메시아의 현존을 드러내었다. 이에 심프슨(A. B. Simpson)은 “신유란 인간 육체 속에 주입하시는 초자연적 신적 능력으로서, 그들의 힘을 새롭게 하시고 고통 받는 인간 육체의 허약한 것을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신유는 의학적인 치료나 간호를 통한 치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영혼과 육체적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유는 하나님의 전권적인 치유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성결교회가 낳은 위대한 부흥사인 이성봉 목사도 치유의 은총을 체험하고 예수를 영접했듯이, 신유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손길이 닿는 역사(役事)의 한 방식이자,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에 의한 은총이자 체험인 것이다.

현재 우리는 그러한 신유의 은총, 아니 현대교회의 순교자적 치유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허락해주셨다(마 10:1). 그러기에 사중복음이라는 신학적 바탕에 서 있는 성결교회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화해의 능력이 현존하고 있음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더더욱 치유의 복음,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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