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친교, “ koinwiva”(코이노니아)

먼 이국 땅 아프리카 수단에서 선교하다 생애를 마친 이태석 신부의 삶을 영화로 만든 ‘울지마 톤즈'가 한동안 세간을 달구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편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 혹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곱씹게 해주는 것 같다.

그는 아침에 눈떠서 잘 때까지 조건 없이 퍼주는 삶을 살다간 수단 톤즈 한센병 마을의 친구이자 성자였다. 그야말로 그는 항상 하나님께 친밀한 기도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톤즈의 한센병 마을 주민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다 한 인생을 마감했다.

신약성경에서 ‘교제’(fellowship)를 의미하는 헬라어원어는 ‘코이노니아’(koinwiva, 신약에 19번 등장)이다. 이 용어는 상호 간의 매우 밀접하고 끈끈한 결속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친교’(communion), ‘사귐’(고후6:14, 요일 1:3, 6, 7), ‘교제’(행2:42, 고전1:9, 갈2:9, 빌1:5, 2:1, 몬1:6), ‘참여’(고전10:16, 고후8:4, 빌3:10), ‘교통’(고후13:13), ‘나눔’(히13:16), ‘연보’(롬15:26, 고후9:13)등 광범위한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의 뿌리인 동사 '코이노네오'(koinoneo, 신약에 8번 등장)는 고대 헬라어에서 ‘무엇을 누구와 함께하다’, ‘참여하다’, ‘공유하다’, ‘몫을 나누다’, ‘공동체를 형성하다’라는 의미로 타인을 돕기 위해 그들의 필요에 도움을 주는 표현이었다. 이 동사에서 파생된 또 다른 명사가 ‘동료’, ‘참여자’, ‘동반자’의 뜻인 ‘코이노노스'(koinonos, 신약에 10번 등장)이다.  

원래 ‘koinwiva’는 일반 상업, 무역 용어로서 어떤 일의 공동 과업에 동료 일꾼이나 동반 관계의 참예자로 맺는 사업 관계를 말하는 것이었다. 고대 상인들 세계에서 상업행위는 서로 동료요 동업자라는 강한 의식을 가지고 함께 한다는 것, 나눈다는 것, 신뢰와 사랑으로 맺어진 밀착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1세기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 ‘코이노니아’란 가장 친밀하고 가까운 인간적 결속을 나타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상인들이 장사하여 그 이익과 지출을 함께 나누는 등의 경제학적, 경영학적인 개념으로, 원만한 상업행위를 위한 상인들간의 끈끈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당시 지중해 헬라 세계에서 상업적인 용어로만 통용되던 코이노니아라는 말을 차용하여 교회적 용어로 승화시켜 사용했다. 초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koinwiva’는 먼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친밀한 교제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이 얼마나 밀착 관계에 있느냐,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사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동반자로 삼으셨고 자신의 공동 관심사 즉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항상 함께 할 것을 맹약하셨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이 코이노니아란 말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친밀하신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그분의 가장 친밀한 동료이자 참여자로서 선택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동반자로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촌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면서 그들의 필요에 나눔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소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속사정을 보살필 뿐만 아니라, 상호 동반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도움을 주는 실천적 친밀감을 말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코이노니아는 하나님과 인간이 한 식탁에서 그 희생제물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식탁에 참여자(동반자)로 초대받았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과 항상 함께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교제 혹은 사귐이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신적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상호관계에서 그 친밀함을 지속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을 쌍두마차 삼아 성도의 마음을 가다듬어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게 하여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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