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계 예수회를 통해 400년 전 복음 전파
수백년 이어진 박해에도 복음의 끈 놓지 않아

▲글로버공원에서 바라본 나가사키 전경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 26개의 십자가가 일렬로 늘어 놓여 있었다. 오전 10시경 26명은 자신의 눈앞에 26개의 십자가가 늘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달려가 자신의 십자가를 감싸 안았다고 한다. 전원이 묶이고 난 후 일제히 십자가가 세워졌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이들은 주기도문과 시편을 읊으며 하나님을 찬양했다(책 ‘나가사키의 십자가’ 중).

일본 최서부에 위치한 큐슈지역, 그곳에 위치한 항구도시 나가사키는 외국과 교류를 빨리 시작한 덕에 일본에서도 가장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를 가진 곳으로 여겨진다. 화려한 장식과 건물, 먹거리 외에도 이곳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나가사키 땅에 뿌려진 순교자들의 희생때문이다.

7월의 무더위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7월 25일 일본 나가사키를 방문했다. 하카타역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여를 달리면 도착하는 나가사키는 일본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다. 이 지역은 일찍부터 해외와의 교류가 활발했다. 17세기에 이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서구 열강과 교류하는 무역항이 설치됐을 정도다. 이러한 무역 교류는 종교 교류로도 이어졌다. 나가사키에는 유난히 교회가 많다. 서구와 활발히 무역하며, 천주교가 일찌감치 소개됐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나가사키 역에서 10분 도보로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26성인 순교기념비’가 당시의 처참한 역사를 후손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나가사키 니시자카 언덕에 위치한 ‘26성인 순교기념비’와 니시자카 교회는 일본선교의 역경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곳이다. 특별할 것 없는 기념비와 두 개의 우뚝 솟은 탑을 가진 교회에 불과하지만 그 속을 알수록 안타까움과 존경심이 저절로 생겨났다. 

우리나라보다 더 일찍 복음이 전파됐던 일본. 특히 나가사키는 그러한 일본에서도 가장 빨리 천주교에 기본을 둔 복음이 전해진 곳이다. 1530여년 무렵 동방선교를 시작한 카톨릭계 예수회가 일본에 처음으로 복음을 소개했다. 이들을 시작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방문해 교회를 세우고, 2년간 1500여명의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갑작스러운 ‘기독교 금지령’ 때문에 선교사들이 내쫓기고, 많은 교회가 파괴됐으며,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성도 26인의 귀와 코를 자르고 1만km를 끌고 다니는 학대를 서슴지 않았다. 복음을 접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리고 이들은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 니시자카에 십자가에 매달려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기념하고자 지난 1962년에 니시자카에 기념비와 교회가 세워졌다. 기념비를 자세히 살펴보니 아직 꽃을 마저 피우지 못한 어린아이 3명이 조각되어 있다. 잔혹하다. 아니 안타깝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기쁘게 자신의 십자가를 껴안았다. 이들의 아름다운 순교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숙연해진 마음을 달래고 전차로 10여분 이동해 오오우라 천주당을 방문했다. ‘26순교자교회’라고 불리는 오오우라 천주당은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그러나 건축의 역사보다는 일본에 다시 복음의 희망을 불러일으켰던 공간이라는 점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천주당은 건축 당시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이었으나, 천주당이라는 한자를 보고 찾아온 숨어있던 신앙인들을 다시 뭉치게 만든 공간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부터 이어진 기독교 박해, 그럼에도 자신들끼리 똘똘 뭉쳐 지켜나갔던 신앙이 성당을 통해 다시 활활 타오른 것이다.

만약 이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공간에 불과하지만 이 성당이 지어졌기에 많은 신앙인들이 다시 신앙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이처럼 일본 어딘가에는 성당처럼 자신의 신앙을 깨닫게할 무언가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꾸준히 계속 복음을 전해야만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렇기에 0.8%라는 복음화율에 좌절하지 말고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복잡해진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일본의 현재를 향해갔다. 현재까지 예배가 열리는 우라카미 성당을 멀리서 바라보자 감사의 말이 저절로 나온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성전의 모습이 마음을 쿵쾅거리게 한다. 일본교회에서는 십자가를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멀리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며, 우뚝 솟은 우라카미 성당의 십자가가 일본선교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잔혹한 두 정치가는 일본에 복음을 막고 또 막았다. 그렇게 금지됐던 복음이지만 지금까지 남아 꽃을 피우고 있었다. 순교자들의 희생과 선교사들의 열정을 토양 삼아, 역경을 딛고 꽃을 피운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을 외면할 수 있을까. 

지금 일본은 불안함과 싸우고 있다. 이때 우리가 소개하는 예수그리스도는 이들의 마음을 녹이고 어루만질 것이다. 감정적으로 좋아하기 힘든 나라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 쉬운 나라도 아니다. 하나님이 한국을 부흥케 하신 이유는 이 나라 밖에 많은 민족을 구원하길 바라시기 때문 아닐까. ‘가깝고도 먼’ 일본이 바로 그 민족은 아닐지 생각해볼 때다.

▲지금도 예배가 드려지는 우라카미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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