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사상·교회 난립 개신교 16% 불과 감소 추세 … 이슬람 100만명 육박

이준 열사가 순국한 네델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회의사당 모습. 당시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이곳도 한때는 대성당이었다.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는 개혁주의 신앙의 본거지다. 일찍이 해상 무역이 발달했던 네덜란드는 종교개혁 이후 신교를 가장 빨리 받아들이고, 칼빈주의적 개혁주의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다.

18세기 이후 유럽의 개혁주의의 흐름을 주도했으며, 북미지역 개혁교회(장로교회)의 생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네덜란드의 개혁교회가 미국, 캐나다 등을 거쳐 바로 한국의 장로교도 낳았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 ‘튤립’은 사실, 개혁주의 신앙고백을 상징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함께 개혁주의 신학 표준 문서로 받아들이는 ‘도르트 신조’가 튤립(Tulip)이란 다섯 글자로 요약된다.

이런 개혁주의 정신은 네덜란드의 독립과 동시에 기독교 나라를 세우게 한 힘이었다. 북해에서 파도와 싸우며 척박한 국토와 투쟁하면서도 스페인의 가혹한 종교탄압에도 불구하고 신앙자유를 찾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바로 개신교인들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과 개혁교회의 잦은 분열, 세속 신학의 난립으로 차츰 생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급속히 추락한 네덜란드 개신교에 이제 소수종교로 전락해가고 있다. 네덜란드 국민 중 33%만이 기독교인(가톨릭 포함)이라고 응답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150년 전까지만 해도 네덜란드 국민의 대다수가 기독교인이었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4분 3이 기독교인이었다. 2002년까지도 성인 60%가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반면 이슬람을 비롯한 여타 종교는 8%에 불과했다.

네델란드의 개신교 역사는 네델란드 역사와 같이한다. 종교개혁 후 신교를 받아들였고, 스페인에서 독립할 때 개신교가 국교가 되었다. 한때 성당으로 사용되었던 국회의사당 정면 모습.
그러나 2007년부터 네덜란드 개신교의 인구는 겨우 16.8%에 그쳤고, 가톨릭 역시 26%로  감소했다. 반면 이슬람은 네덜란드 전체 인구 1700만명 중 100만명을 넘어섰다. 네덜란드도 다른 유럽국가와 만찬가지로 기독교인의 인구는 줄고 이슬람의 숫자는 급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항구도시이자 기독교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를 배출한 로테르담에는 이슬람 인구가 무려 25%나 된다. 무엇보다 신생아의 절반이 무슬림이고, 4대 도시에서 남자 신생아의 이름 중 가장 흔한 이름이 ‘무하마드’라는 충격적인 보고도 있다.

이런 현실이라면 앞으로 15년 내에 무슬림이 전체 인구의 50%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네덜란드는 이제 이슬람화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이슬람의 빠른 유입과 성장은 다문화와 이민에 대한 관대한 정책 때문이다. 한때 해상무역이 발달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사상을 쉽게 받아들이는 전통이 이제는 반대로 다른 사상과 종교가 들어오는 통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 결혼과 안락사 등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는 법안도 네달란드에서 가장 먼저 허용되는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 탓이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절반가까이가 해수면보다 낮지만 북해에서 파도와 싸우며 척박한 국토와 투쟁하면서도 스페인의 가혹한 종교탄압에 대항해 마침내 독립운동을 쟁취한 개혁주의 신앙(장로교)의 본산이었지만 지금은 기독교 국가의 정체성 마저 흔들리고 있고, 오히려 이슬람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사진은 네덜란드 풍차마을.
이런 네덜란드의 변화에는 개혁교회의 책임이 크다는 분석이다. 지나친 자유주의와 세속주의 사상에 개혁주의가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인본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은 화란의 세속주의신학을 낳았다. 
잦은 교회 분열도 이런 위기를 초래하는데 한 몫했다는 지적이다. 네덜란드의 개신교 교단 숫자는 600개 넘는다. 2008년 기준으로 네덜란드의 교회 수는 1800개에 불과한데, 교단 수는 전체 교회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네덜란드 개신교회의 정체성과 위상이 점점 추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네덜란드 기독교인의 설 자리도 좁아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Uitdag inga(도전)’란 월간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월간지의 독자 중 64%가 기독교인에 대한 적대행위를 경험했다고 네덜란드의 한 기독교계 신문이 보도한바 있다. 실제로 철도의 역무원이 제복을 착용할 때 십자가 목걸이 등을 착용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의 판결도 나왔다.

이슬람을 비판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던 테오 반 고흐 감독이 2004년 테러로 사망한 사건도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다. 네덜란드에서 조차 무슬림 커뮤니티의 문제를 거론할 경우 공개적으로 보복을 당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네덜란드가 옛 종교개혁 정신을 회복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거하다’는 의미가 있는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은 한때 종교개혁의 본고장인 독일과 스위스를 거쳐 네덜란드에서 꽃을 피웠다. 칼빈의 종교개혁이 들어오기 이전에 루터의 글들이 먼저 소개되어 널리 읽혔다. 어거스틴파 수사들도 루터의 가르침을 가르쳤고, 1523년에 이미 그 수사들 가운데 두 사람이 이단 혐의로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박해가 더 심해져 1561년에는 단지 성경적 신앙을 고백한다는 이유로 10만명이 넘는 개혁주의자들이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로마 교회의 끈질긴 박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으로 개신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영국에서 박해를 받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온 곳도 바로 네덜란드의 라이든(Leyden)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던 청교도들이 대서양을 건너가 미국에서 개혁주의 신앙을 전파한 것이다.

한때 칼빈주의적 개혁주의신앙은 네덜란드의 국가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며 네덜란드 국민의 생활 가운데 계속적으로 현저한 요소가 되어왔다. 이제 이런 개신교의 영향력을 확대해야 네덜란드가 다시 개혁신앙의 본산지의 역할을 회복할 수 있고, 종교적인 갈등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영환 교수(서울신대 선교학)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기독교 정신을 발휘해야 종교갈등을 더 줄 일 수 있다”면서 “이것이 바로 유럽의 재복음화가 필요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이슬람은 점령한 지역을 빼앗긴 적이 거의 없지만 기독교는 한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가 쇠퇴하는 역사를 되풀이되고 있다. 신앙고백서와 종교회의를 통해 개혁주의의 엄밀함을 제시했던 네덜란드의 기독교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 정체에 빠진 한국교회도 이런 네덜란드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형식주의와 외적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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