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개방적인 이슬람 문화…서서히 정열의 나라 스페인 물들여

 

옛 이슬람 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축한 세비야 대성당. 히랄다탑에서 내려다본 성당과 세비야 시내 모습.
유럽에서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스페인이다. 다른 유럽에서 볼 수 없는 이슬람의 문화유산을 이곳 스페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로마화 된 기독교 문화와 아랍 문화(이슬람)가 섞여 스페인만의 고유한 문화가 형성하게 되었다. 지금도 스페인은 이슬람 사람들이 유럽 내부로 유입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목적지인 복음의 땅 끝, 미지세계로 출항한 출발지였던 스페인이 이제는 유럽의 이슬람화 선두에 서 있는 것이다.

 

한때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던 무적함대, 스페인이 어떻게 그토록 쉽게 이슬람에 점령되었을까. 스페인에서 이슬람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면서 내내 했던 생각이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스페인 세비야를 시작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톨레도와 그라나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로 발길을 옮겼다. 

이슬람에 기독교문화를 덧입힌 세비야
스페인에서 이슬람 문화가 융화된 대표적인 도시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세비야다. 비제의 ‘카르멘’,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무대로 잘 알려진 세비아는 콜럼부스의 신대륙을 향한 출발지와  세계일주 여행에 나선 마젤란의 출항지가 있어서일까 다른 문화의 흡수력이 강해 보였다. 고대 로마와 중세 고트족, 이슬람 시대를 거쳐 기독교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각색의 역사적 발자취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융화되어 정열이 넘치는 특유의 문화가 눈에 띄었다. 

세비아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과달키비르강 기슭에 있는 황금탑이다. 한때 식민지 인 신대륙의 금으로 도배했던 곳으로 무적함대 스페인을 상징했던 황금탑은 1220년 이슬람교도가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운 전형적인 이슬람 탑이라고 한다. 지금은 마젤란이 세계일주 항해를 떠난 것을 기념해 해양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슬람의 흔적이 적지 않게 묻어났다. 

기독교의 신앙과 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성당에서조차 이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슬람의 옛 사원을 성당으로 개축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비야대성당도 1402년부터 약 1세기에 걸쳐 이슬람 사원의 유적지에 개축되었다. 로마의 성베드로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다음으로 컸지만 그 넓은 규모 뒤에는 ‘메카에 가까울수록 좋다’는 이슬람 사원의 잔재가 숨어 있었다. 지금은 종탑으로 사용하고 있는 히랄다 탑도 이곳이 이슬람 사원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높이 서 있었다. 세비아의 상징으로 불리는 힐랄다 탑은 원래 이슬람사원으로 쓰일 당시에 꼭대기에 사람이 올라가 큰 소리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용도였는데 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축하면서 탑의 꼭대기에 종루를 세우고 맨 위에는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히랄디요'(움직인다는 뜻으로 일종의 풍향 풍속계)를 올려놓았다고 한다.

세비야의 풍경에 한 눈에 보이는 힐랄다의 탑에서 과연 이곳 스페인 신앙의 방향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을 생각해 보았다. 목적 없이 바람 부는 대로 움직이는 나약한 종교인지, 아니면 불어오는 바람에 저항하는 기독교인지 힐라다의 풍량계 처럼 종잡을 수 없었다.

이슬람 문화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알람브라 궁전

알람브라 궁전의 모습

그라나다는 이슬람인들에게는 비운의 땅이다. 유럽 정복의 꿈이 좌절되고 800년 동안 찬란히 꽃피었던 이슬람 문화가 끝내 짓밟힌 땅이기 때문이다. 북쪽으로 밀려난 기독교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국토 수복 운동을 일으켰고, 이후 1340년 카스티야의 이사벨에게 대패한 후 1492년 마침내 이슬람의 마지막 보루였던 그라나다가 정복되면서 이슬람의 꿈도 함께 사라졌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알람브라 궁전은 세월의 풍파와 가톨릭 공동왕 이후 수많은 증축과 개수를 거쳤지만 여전히 이슬람 궁전과 정원의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물을 다루는 솜씨와 섬세한 건축미학이 가장 뛰어나다는 아랍의 문화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알람브라 궁전이다. 옛 궁전에서 코란 읽는 소리는 사라졌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물소리가 한 낮의 더위를 잊게 했고, 수많은 아치형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과 그곳을 통해 한 눈에 내다보이는 그라나다의 정경들은 사람의 마음을 맑게 만드는 듯 했다. 다소 단조로운 외곽과는 달리 사방으로 난 아치를 통해 햇살이 비추어오면 섬세한 기둥, 오묘하면도 정교한 벽면 장식이 차분하고 애잔한 역사의 무게를 느껴지게 했다.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규율에 따라 어떤 상도 세우지 않은 것도 이채로웠고, 정작 그 유명한 돌사자의 분수도 다른 나라의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들으면서 다시금 이슬람의 고집스러움에 놀랐다. 

그래서일까 이슬람에게 빼앗은 궁전이지만 후대의 기독교인들은 아람브라궁전을 정중하게 보존하면서 일부를 개축해 왕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슬람 생활문화의 높이와 탐미적인 매력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는 아람브라 궁전에서 겉은 투박해도 속살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슬람 문화의 정수를 엿볼 수 있었다. 이런 이슬람의 부드러운 힘이 정열적이면도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스페인 사람의 정서를 파고들고 있지는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중세가 살아있는 톨레도
타호강을 허리에 두른 천연의 요새 톨레도는 스페인의 옛 수도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문화가 하나로 어우러진 다문화도시다. 6세기 이슬람 세력에 점령됐다가 1085년 기독교인들이 무혈로 입성할 때까지 400여 년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에는 스페인 종교의 본산지 역할을 했다.

타호강을 허리에 두른 천연의 요새 톨레도는 스페인의 옛 수도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문화가 하나로 어우러진 다문화도시다.

 

13세기의 고딕식 성당, 무어풍(風)의 왕궁과 성벽, 유대교회 등 이색 건조물이 많고, 조금만 걸어도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고풍스러운 골목길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거대한 중세의 박물관과도 같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것이 톨레도대성당이다. 고딕부터 르네상스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의 총합체인 톨레도 대성당의 외관은 하늘을 찌를 듯 높고 웅장하다. 이곳 톨레도 대성당 역시 이슬람의 모스크를 허물고 1227년에 건축을 시작해 266년 만에 완공했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무어양식과 달리 겉도 화려하지만 내부는 더욱 수려하다. 아름다운 빛깔의 스테인드 글래스와 신약성서 내용을 형상화한 제단 병풍,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성모마아리아 상, 그리고 천재화가 엘 그레코의 성화 볼 수 있다. 신약성서를 글과 그림을 양피에 필사한 성경 등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맛볼 수 있어 그야말로 고풍스러운 아름다움, 경건함이 뒤썩여 감동을 선사한다.

화려함과 웅장함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톨레도 대성당 외곽 모습

그렇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이렇게 웅대한 성당에는 22개의 예배당이 있다고 하지만 예배드리는 인원은 많지 않다고 했다. 주일 낮에 방문했지만 수많은 관광객들이 성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성당이 지어진 그 옛날에도 만찬가지였다고 한다. 화려한 성채와 성상, 성화가 성당을 차지하고 그 남은 공간은 귀족들의 차지였기 때문이다. 재단 병풍은 쇠창살로 지금까지 가로 막혀 있고, 일반 사람들은 그림으로만 성경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시 기독교나 현재의 텅빈 성당이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았다. 생활 속 깊이 파고든 이슬람과 너무나 대조되었다. 

 

사실, 이슬람이 스페인을 800년 이상 지배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개방과 관용에 있었다. 당시 아랍은 스페인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정책을 썼고 배척이 아닌 포용을 통해서 그들을 지배했다고 한다. 귀족화가 아닌 모두를 품는 이슬람의 포용정신이 스페인의 기독교를 쉽게 무너트리고 지금까지 이슬람 문화를 이어가게 만든 이유였다는 사실을 똘레도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기독교의 겁데기만 남은 유럽과 무늬만 화려하고 오만하다기까지 비판받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진정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은 바로 낮은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날선 대립과 배척이 아니라 희생과 사랑이라는 본래의 기독교 정신이 이 땅의 진정한 화합과 공존의 법칙이라는 것을 일찍이 포용과 관용으로 유럽 최대 문화와 종교, 학문을 꽃피운 톨레도가 말없이 웅변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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