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가탄일. 이 나라가 언제부터 불교를 국교로 정했었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서울시내 곳곳이 연등으로 장식되었고 연등행렬에는 30만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연등행렬을 지켜본 어느 외국인 관광객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제일이었다”는 소감을 밝혔다는 보도도 있었다. 석가탄일을 축하하는 연등의 물결은 전국을 뒤덮었고 불교는 이 땅에서의 위세를 마음껏 과시했다.

▨… 보름 쯤 지났는가, 부활절이…. 서울의 남산을 뒤엎었던 인파들, 막달라 마리아처럼 부활의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통금’이 해제되자마자 서둘러 집을 나섰던 발걸음들은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는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모처럼 부활절 새벽예배에 한 목소리를 내었다고 하면서도 그 결과가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손실 혐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 똑같은 액수라도 얻은 것의 가치보다 잃은 것의 가치를 훨씬 크게 느끼게 하는 것을 일러 심리학은 손실 혐오(loss aversion)의 심리라고 규정한다. 유일하게 ‘통금’이 해제되는 날이라는 특혜를 누렸던 1960~70년대의 성탄절은 그 의미에 대한 질문은 괄호 속에 남겨둔다 하더라도 전국민의 축제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부활절도 자발적으로 깨어난 믿음의 열정이 촛불을 밝혀 새벽을 깨우는 촛불이 연등행렬보다 더 아름다웠었다.

▨… 종교(Religion)라는 단어와 힘줄(Ligament)이라는 영어 단어는 ‘묶는다’는 뜻을 가진 동일한 라틴어 어근에서 유래했다. 기독교 신앙이 무교회주의적인 개인 신앙 차원에 머무를 수 없음을 밝혀주는 상징성이기도 하다. 기독교 신앙은 비단 초대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에서도 공동체 차원이어야 하는 것이다. 성찬(communion)은 그리스도와 나를 하나로 묶으면서 동시에 신앙인을 하나로 묶는 것(교회)이기도 한다.

▨… 개인주의가 넘쳐나는 까닭일까. 오늘의 교회에는 개교회주의, 교파주의, 분파(sect)주의가 판을 친다. 우리 교단만해도 충청, 호남, 심지어는 누구누구 사단이라는 말까지 난무한다. 불교나 천주교의 교세에 비해 모자랄 것이 없는 기독교의 교세가 상대적으로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 숫자가 하나로 뭉쳐지는 힘을 상실하고 있는 탓일게다. 교단부흥보다 공동체 회복이 우선이라면 잠꼬대 그만하라고 핀잔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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