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은 어린이날이고 교회는 5일을 전후로 어린이 주일을 지킨다.
어린이날은 1922년 일제하 가난하고 열악한 상황 속에서 소파 방정환 선생을 비롯해 뜻있는 분들에 의해 제정되었다. 조국이 가난하고 열악하지만 미래 우리나라를 이끌어 나갈 어린이들이 밝게 자라나도록 제정한 것이다.

교회적으로 어린이주일은 마가복음 10:13~16절의 사건에 기초하고 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자 제자들이 꾸짖었고 예수님은 화를 내시며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 어린 아이들을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셨다. 교회는 예수님처럼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고 양육하고 축복하기 위해 어린이주일을 제정한 것이다.

어린이날과 어린이주일이 되면 아이들은 어떤 선물을 받게 될 것인지 설레게 되고 부모들은 어떤 선물을 할 것인지, 어떻게 아이들과 놀아줄 것인지 고민한다. 모든 놀이시설과 행사장마다 아이와 함께 한 부모들로 넘쳐나고 도로도 꽉 막혀 짜증나지만 부모들의 그 짜증조차도 즐거운 고민, 행복한 고민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일제와 보릿고개 시절을 보낸 세대의 입장에서 볼 때 경제성장으로 모든 것이 풍족해 진 상황에서 아이들은 행복해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물질적 행복을 나아졌을지 모르나 아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보호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으로만 단정하기 어렵다.

우리 주변에는 부모의 갈등으로 인한 이혼과 사고 등으로 생존의 권리를 위협받고 있는 아이들이 있고 가정 내 폭력과 사회적인 성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수가 늘고 있다. 또한 경쟁 중심의 사회 속에서 어린이들은 유아 때부터 영어 학원을 시작으로 피아노와 체육학원 등을 오가야 하는 무한경쟁에 내몰린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과 성결교회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양육하고 키워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아이들을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양육하기에 힘써야 한다. 성경은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고 말한다. 이처럼 성경은 자녀교육의 가장 큰 책임을 가정, 즉 부모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가정을 자녀들의 교육현장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도록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자녀를 양육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부모는 ‘내 아이’ 만이 아니라 ‘내 이웃’의 아이, 우리 교회의 아이, 우리 사회의 아이를 양육하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 ‘내 아이’를 생각하다보면 부지불식간에 ‘내 이웃의 아이’를 무시하게 된다. 그럴 때 ‘내 이웃의 아이’는 상처받고 잘못된 길에 들어설 수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내 이웃의 아이, 우리 사회의 아이를 사랑으로 품는 마음자세를 갖고 주변에 있는 어려고 힘든 가정의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기아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는 구호봉사에도 힘써야 한다.

공교육이 경쟁체제 속에서 붕괴된 현실을 고려해 교회는 미래 세대인 어린이들을 양육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다양한 교육방법을 활용하여 올바른 믿음의 길, 이웃사랑의 길, 미래에 대한 소망 등을 교육해야한다. 이 일을 위해 우리 교사들은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간절한 기도로 더욱 헌신해야 할 것이다. 내 아이를 키우듯 헌신하는 교사들의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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