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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현장> 9-최후 만찬장, 다윗의 무덤
카르도를 지나 최후만찬 장소에 머물다.
[0호] 2011년 03월 13일 (일) 21:55:45 조재석 기자 stonespirit@hanmail.net

이스라엘 성서현장 9-최후 만찬장, 다윗의 무덤

카르도를 지나 최후 만찬 장소에 머물다

 

   
▲ 유대구역에 들어서서
다윗의 탑을 나온 후 아랍 구역을 다시 지나 유대 구역에 들어선다. 예루살렘은 이슬람교인 지역, 기독교인 지역, 아르메니아인 지역, 유대인 지역 등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비아돌로로사는 이슬람교인 지역에서 기독교인 지역에 걸쳐 있고, 다윗의 탑은 기독교인 지역과 아르메니아인 지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아랍식 시장을 지나 유대인 구역으로 들어선다. 아랍식 시장이 우리네 재래시장처럼 복잡한 상점 앞에 물건을 쌓아 놓고 손님을 끄는 복잡한 모습이라면 유대구역의 시장은 깔끔한 현대식 시장과 같은 곳이다. 명품관이나 쥬얼리샵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밤에는 닫힌다는 철문을, 유대인 구역임을 알리는 이스라엘 국기가 걸린 통로를 지나 유대 시장에 들어섰다.

시장을 지나 처음으로 찾은 곳이 ‘카르도’(Cardo)이다. 카르도란 로마식도시의 특징 중 하나로, 도시의 남쪽과 북쪽을 잊는 넓은 대로를 뜻한다. 예루살렘도 로마시대 때에 로마식 도시로 바뀌었고 카르도가 설치되었다. 지붕이 열린 지하에 로마시대 영화에 개선장군이 들어선 모습에서 연상되는 돌로 만든 길과 기둥 몇 개가 전부였고 한 쪽 벽에 이런 형태였음을 알려주는 그림이 전부다. 길 중간에 지하를 파고 로마식 길 형태가 약간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고대와 현대의 공존이 이런 모습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한번 떠올린다.

   
▲ 카르도의 모습

우리나라 경주와 부여, 공주 등이 이런 방식으로 개발해야 하는데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이 문화재가 나올 경우 공사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다시 묻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빨리 빨리’는 과거와 현재의 공존, 고대와 현대의 만남이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역사’는 단절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카르도를 둘러보는 관광객들

아마 예수님을 재판했던 본디오 빌라도(Pilate, Pontius) 유대 총독이 유대의 최고 명절인 유월절을 앞두고 이 길을 통해 예루살렘에 들어섰을 것이다. 당시 총독이 머물렀던 곳은 가이샤라였는데 그는 예루살렘에 반란을 대비해 병력을 이끌고 왔고 유월절 기간 머물렀을 것이다. 그는 안티오크 요새를 향하여 카르도를 따라 행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행렬을 환영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고관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서기관들, 부유한 상인들이 몰려 나왔고 길에는 고급의 천이 깔리고 수많은 인파가 그들을 열렬히 환영했을 것이다. 행군 나팔 소리에 꽃가루가 휘날렸음을 당연하다. 카르도를 내려다보면서 인파를 향해 거만한 모습으로 손을 흔드는 빌라도의 모습을 연상해 본다.

   
▲ 유대구역 광장에서 젊은이들
하지만 개선장군 같은 빌라도 총독의 모습은 초라한 일단의 무리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성서가 우호적인 입장에서 쓰였다고 전제해도 성서가 그리고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은 로마인들의 모습과는 대비된다. 그들은 가냘픈 나귀 새끼를(막 11:7), 그것도 새끼가 딸린 나귀를 거꾸로 타고 입장한다. ‘카르도’가 아닌 먼지 풀풀 날리는 길에는 사람들의 겉옷이 깔리고 복잡하게 늘어선 사람들은 인근에서 꺾었을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 21:7~9),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 12:13)라고 외친다. 행군 나팔 소리도 없고 길가에 꽃도 뿌려지지 않았다. 다만 마태공동체는 ‘온 성이 소동하여’라는 말로 의미를 부여한다.

카르도를 지나 조그마한 광장을 지난다. 한 쪽에는 커피 가게의 탁자들이 놓여 있고 다른 쪽엔 ‘키파’를 머리에 눌러쓴 유대인 청년이 책을 펴놓고 독서 중이다. 위쪽엔 한 유대인 여성이 컴퓨터를 펴놓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시끌벅적한 아랍식 시장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편향된 시각인지 모르지만 유대인의 ‘여유’가 느껴졌다.

   
▲ 최후의 만찬장소

예루살렘 시온문을 통하여 성모영면 성당과 최후의 만찬 기념교회, 다윗왕의 무덤을 둘러 봤다. 부근에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후 통곡했다는 지점에 세워진 베드로 통곡교회가 있지만 방문하지는 못했다. 성모영면 성당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영면하신 곳이라고 알려진 위치에 세워진 성당이며, 최후의 만찬 기념교회는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행한 방(세나클)과 오순절 성령세례가 임한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곳에 세워진 교회다. 건물 지하에는 다윗왕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찾는 곳이 됐다.

   
▲ 성모 무덤교회
2층에 들어서자 높은 천장의 방이 나왔다. 최후의 만찬(막 14:22~25)이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하긴 어려웠다. 처음에는 보통의 방이었지만 비잔틴시대를 거치면서 수차례의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자연히 천장은 높아지고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으리라 생각해본다. 12명의 제자들과 예수를 따르던 몇이 빙 둘러 않아 식사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이곳에서 예수와 제자들은 떡을 떼고 잔을 나누었을 것이다.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의 영향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탁에 앉아 격조 있게 식사를 하셨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당시의 기본은 맨 바닥에 앉거나 누워 편안한 모습으로 식사가 진행되었다. ‘만찬’이라는 말에는 품격이 느껴지지만 나그네인 예수와 제자들에게 풍족한 식사는 사치다. 그들은 빵과 과일, 포도주 등이 전부였을 것이며 자유로움 속에 식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조용한 정적을 깨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성찬식으로 정형화된 떡과 잔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는 이곳에서 머무르셨을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이곳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셨고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가 잡히신 후에도, 죽으신 후에도 어떻게 할 것인지 몰라 하며 이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열한 제자가 모여 있을 때에 나타나신 곳도 이곳이며(눅 24:36~49),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낸 곳도 이곳이다.(행 2:1~13)

만찬장 바닥에 손을 대고 온기를 느끼려 했지만 차가운 기운만이 올라온다. 2000년 전 저녁식사 현장의 온기는 이미 과거요, 우리는 ‘추정되는 현장’에서 그 때의 모습을 생각하며 ‘추억’하고 있을 뿐이다. 굳게 닫힌 만찬 장 옆 마가의 다락방을 창문 틈으로 볼 수밖에 없어 아쉬움은 컸다. 예수 승천 후 120여 성도들에게 오순절 성령강림이 임했고 그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계를 향해 뻗어나간 현장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다윗의 무덤 내부
다윗의 무덤이 만찬장 아래 위치한 것은 의외의 일이다. 40여 년 간 예루살렘을 통치하고 다윗성에 장사된 그의 무덤 위로 성령이 임했다. 아이러니다. 이곳은 다윗왕의 실제 무덤이라기보다는 기념묘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의 왕들의 무덤은 명성과는 상관없이 그 위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윗의 무덤도 985년 역사가 알무콰다시에 의해 처음으로 언급된 이후 유대인, 이슬람인, 기독교인들의 믿음으로 성지화되었고 유대인 순례지의 핵심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10세기경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기념묘일 가능성이 높다.

다윗의 무덤에 유대인들이 경배를 드린다. 그래서 무덤에 들어가기 전에 종이로 만든 키파를 눌러써야 했다. 남, 여가 구별하여 출입해야 하는 이곳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아직도 대망하는 유대인들은 토라를 외고 기도하며 ‘어서 오시옵소서’를 외친다. ‘키파’를 쓴 정통 유대인의 토라 암송 모습을 무덤덤한 모습으로 지나쳐 다윗의 무덤을 둘러본다. 무덤이라고 부르기에 너무도 작은 그곳에서 기도하는 한 유대인의 모습을 지켜봤다. 비아돌로로사 끝자락에서 만난 성역화된 (예수)무덤교회와는 또 다른 미묘한 느낌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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