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교육자 페스탈로치 선생은 “종교는 인간을 다듬는 근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종교 없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인간화될 수가 없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종교는 삶의 유일한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곧 종교가 없을 경우 연속적인 절망의 세계, 절망의 인간이라는 뜻이 되겠다.

누구든지 권력과 세계의 황금을 한 손에 다 쥐고 있다고 한들, 삶의 희망을 잃고 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영원한 삶에 희망이 없다면 모든 것은 절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시성 단테는 그의 작품인 신곡의 지옥편에서 “여기(지옥)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진저”하고 읊었다. 시인 단테는 지옥을 절망의 세계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희망의 나라가 곧 천국일 것이다.

프랑스 작가 레옹 블로아는 “사람은 빵 없어도 살 수 있다. 집도 사랑도 행복도 없이 살 수 있다. 그러나 신비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종교적 신비가 없는 인간에게는 먹는 빵도, 살고 있는 집도 사랑하는 애인도, 궁극적으로 인간을 허무로 몰고 갈 것이기에 이 모든 것의 긍정을 위해 종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인 것 같다.

그러면 이제 종교에 대한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자. “종교는 나와 신비한 생명의 근원이신 절대자, 즉 신과의 생명 관계이다”라고 한다면 그 뜻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종교를 “영원한 삶의 문”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종교는 영원한 희망의 길, 종교는 절대적인 가치관의 정립, 종교는 영원 행복의 문, 종교는 영원한 사랑의 결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종교는 인간이 추구하는 영원한 것으로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와 같다. 인간은 생명을 가지고 있기에 생명이 끝나는 죽음을 앞에 놓고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을 극복하는 것이 종교라고 한다면 새로운 삶의 문을 여는 절대적인 가치의 내용일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절망과 다행의 연속에서 끝이 없는 행복의 갈증을 느끼기 때문에, 종교는 이것을 해결하는 영원한 행복의 문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권력자들이나 세상의 재벌가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한계점, 재산의 한계점 앞에서 가슴을 치고 있을 때 권력도 재산도 없는 가난한 농부가 신앙을 통한, 희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과연 누가 더 보람있는 삶의 주인공일까?

영원하고 무한한 절대적인 가치가 없다면, 오늘의 물질문명도, 오늘 기계사회도, 인간을 가장 비참하게 정신적인 가난뱅이로 몰아갈 것이다. 이 가난뱅이는 땅을 치고 통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적인 가난 때문에 돈만이 절대적이고, 권력만이 절대적이고, 명예와 허영만이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하는 자들의 머리는 온통 텅텅 비었을 뿐이다. 그들의 머리에는 돈이나 칼자루, 권세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죽을 때도 허무로 돌아가는 그런 것들로만 꽉꽉 차 있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가난한 여러분. 그 가난 속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재산,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행복에 처한 갈증을 느끼지 않는가? 가난뱅이로 살면서도 배고픔을 못 느끼고 갈증도 느끼지 못하는가? 여러분들이 번 돈, 여러분들이 얻은 권력과 명예 그것들은 여러분의 죽음과 함께 고스란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잠깐 지나가는 물질에 대한 애착, 권력과 명예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값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착각, 이것은 너무도 큰 환상이다.

가난뱅이 여러분. 우리는 인생무상을 느낀다.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으로, 절대적인 가치를 찾는데 우리의 시선을 돌리자. 종교만이 삶과 죽음의 근본문제를 해결한다. 왜 종교가 그런 해결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 사람의 삶과 죽음을 한 손 안에 쥐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다. 이러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이다. 왜 종교가 필요한가? 종교는 사람의 현세의 삶뿐만 아니라 말 내세의 삶까지 걱정하면서 인생의 근본,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

어느 종교이든 사람이 죽으면 평안하게 내세에서 복을 누리고 기원해주고 또 종교의식을 행한다. 바로 이러한 뜻이나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갖게 된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내 삶과 나의 죽음과 직접 연관된다는 뜻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종교만이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이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에 대한 참된 의미를 종교만이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생명들이 있지만 그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는 이 세상에서 답변이 되지 않는다. 신비의 세계에서만 생명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생명을 만드신 분이 바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과 관계가 곧 종교이다. 그러므로 종교를 가지게 되면 산다는 문제와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방향과 그 의미를 얻을 수 있다. 그 답변이 성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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