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사회의 화두는 복지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큰 이슈가 된 이후로 무상의료와 교육, 주거복지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정파와 개인에 따라 선택적 복지, 보편적 복지, 맞춤형 복지 등 표현과 방향이 다르기는 하지만 더 나은 복지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논쟁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몸부림으로 여겨져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참 좋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복지로 우리의 미래를 맡겨야 할까? 이사야 45장 3~4절에서 그 답을 말해주고 있는데 바로 ‘모태에서 백발노년까지’ 하나님의 품에 안겨 사는 은혜복지가 그것이다. 오늘날 모든 국가보장제도의 이상이며 목표인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은 세상복지라고 한다면 이 둘을 비교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줄 것이다.

첫째, 세상복지는 국가부도를 걱정해야 하지만 은혜복지는 마르지 않은 하늘창고가 있다. 무상복지를 하다보면 과도한 재정지출로 인해 피치 못하게 국가부도의 위험을 안게 된다. 또한 세상복지는 몇 해 기근이 닥치면 그것을 지속할 수 없다. 흉년이 들면 곡물 값을 비롯해 모든 것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진 것으로 쌀 한 됫박과 바꿔 먹고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나라도 구제해 주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하지만 은혜복지는 이와 무관하다.엘리야 시대 3년 반 동안 기근이 발생했지만 하나님은 엘리야를 배불리 먹이셨고 사렙다 과부를 풍성케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복지는 기근이나 흉년 등에 의해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무상복지는 광야에서조차 부족함이 없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와 마셨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추위와 더위를 이기게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시는 은혜복지는 한량없고 다함이 없는 복지요, 하늘창고는 부도가 나거나 마르는 법이 없다.

둘째, 세상복지는 육신만을 채워주지만 은혜복지는 심령까지 채워주는 것이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여기에서 예외는 없다’고 했다. 복지는 바로 인간의 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이다. 그러나 복지가 발달한 나라들의 자살률은 세상복지가 결코 사람에게 만족함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위스의 경우 자살이 교통사고를 압도하는 최고의 사인(死因)이며 핀란드, 스웨덴 등도 매우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복지가 음식은 주어도 입맛은 줄 수 없고 침대는 주어도 단잠을 줄 수 없다. 인간심령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복지는 인간의 육신 뿐 아니라 심령까지 채워주는 복지이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로, 생수의 강으로 심령에 기쁨이 넘치게 하시는 것이다. 인간을 만족케 하는 진정한 복지는 오직 주님 안에 있다.

셋째, 세상복지는 낙인이 찍히나 은혜복지는 간증거리가 되게 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선택적 복지는 혜택을 받는 사람에게 ‘구제받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게 만든다. 복지혜택을 받기는 하나 자존심은 심하게 망가지는 것이다. 복지혜택을 받는 사람을 실패자로 보는 불편한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은혜복지는 많이 받으면 많이 받을수록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간증하도록 한다. 커다란 감동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되고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높이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은혜복지는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 사모함의 대상이 되게 한다.

넷째, 세상복지는 벌어진 격차를 고착시키지만 은혜복지는 역전시킨다. 생산적 복지는 일자리 제공을 더 나은 복지로 여긴다. 그러나 ‘워킹 푸어’라는 말은 일자리조차도 심하게 벌어진 격차를 줄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비정규직의 확산, 부동산 가격의 상승, 빈부의 격차로 생기는 교육의 격차가 가져오는 신분 격차 등을 보잘 것 없는 일자리로는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은혜복지는 역전이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주시고 좋은 사람들을 붙여 주신다. 어려움이 올 때 견디고 나갈 힘, 박차고 나갈 힘을 주신다. 허랑방탕하던 생활이 근면과 절약하는 생활로 바뀌어 부의 축적,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진다. 말씀과 기도로 문제를 돌파하고 재기할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잘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역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세상복지는 현상유지에 그치게 하지만 은혜보기는 뒤집는 역사를 가져오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복지를 의뢰해야 한다.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의 은혜복지에 맡기고 가야한다. 세상의 복지도 필요하고, 성도들은 복지가 확대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복지는 한계가 많이 있기에 그 위에 은혜의 복지가 있어야 한다. 믿음의 길은 이 은혜복지를 기대하고 가는 길이요, 이 은혜복지를 삶 속에서 누리며 가는 길인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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