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성결교회에서 자란 사람들은 누구나 사중복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왔고 말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사중복음이 다른 교회들과 성결교회를 구분하는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성결교회만의 전도 표제임을 분명히 인식해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성도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목회자 앞에서, 그리고 교회의 직분자가 되기 위하여 지방회 심리부 목사와 장로들 앞에서, 그리고 목회자가 되기 위해 서울신학대학교 면접 담당 교수 앞에서 “중생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누구도 “예. 저는 분명히 중생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이런 의문점이 생깁니다. 중생 질문에 확신에 찬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중생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중생에 대해서 바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중생은 경험되어져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배워서 확신을 가지면 되는 것일까요? 더나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경험 또는 체험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교리적인 가르침과 배움으로 얻게 된 지식이 바탕이 되어 대답해야 하는 것일까요?
중생에 대한 성결교회의 공식적인 설명이 교단 헌법 제 1장 총강 제 6조 전도 표제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중생은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가르치신 내용 중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 중생 즉 거듭남은 기독교에 들어서는 문이며, 동시에 천국 시민의 자격을 갖추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 근거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하신 말씀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중생은 사람이 죽어서 두 번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로 일상의 삶에서 경험할 수 없는 신비에 속한 영적 변화입니다. 즉 신비로운 중생은 먼저 자기의 죄를 회개한 사람,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속죄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나타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 영혼에서 성령이 그를 다시 새롭게 하므로 즉 거듭나게 하므로 새 생명을 얻어 그 사람의 심령과 인격 전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중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한 것이며(벧전 1:3),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벧전 1:23). 그리고 사도 바울은 중생이 결코 우리의 올바른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중생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딛 3:5). 결국 중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은 삶의 변화로 입증되고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생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가장 분명하게 확신에 찬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신비로운 신앙적인 체험을 한 사람도, 교리적인 배움을 분명히 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다음 이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삶,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만이 확신에 찬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 변화된 삶이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철저한 자기 죄에 대한 고백이 있은 후부터 매일 거듭되고 있는 사람만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 새롭게 변화된 삶 혹은 생활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즉 중생은 대답하는 사람의 입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그들의 눈에 비춰진 변화된 삶에 대한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새롭게 된 삶이 바탕이 되지 않는, 어느 면에서 중생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이 교회의 직분자들이 되고, 목회자들이 되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습이 전혀 증명되지 않는 사람들, 즉 변화된 삶을 살지 않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중생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결교회 성도들이라면 누구든지 “중생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예. 저는 중생했습니다”라는 입술의 대답뿐 아니라 변화된 삶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