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총으로! ‘ca;ris’(카리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낡은 시간이 가고 새로운 시간이 온 것이다. 신묘년이라서 그럴까? 토끼의 눈이 똘망똘망해 보이듯 새해가 여느 해보다도 희망차 보인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는 판다 레이(panta hrei) 즉 “모든 것은 흐른다” 혹은 “만물은 유전(流轉)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말처럼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새해가 밝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그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총(grace)이 아니겠는가. 분명한 것은 그 변치 않는 하나님의 은혜가 지난해도 올해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어에서 ‘은총’ 혹은 ‘은혜’라는 말은 “ca;ris”(카리스, 신약성서에 155번 등장)라고 한다. 원래 ‘카리스’는 ‘카이로’(chairo)에서 파생한 말로서, “기쁨이 있으라”는 뜻이다. 또한 “누군가의 호의로 인해서 기쁨이나 즐거움 그리고 감사의 마음이 드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를 강조할 때 항상 이 개념을 사용하였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의해서 선사된 그분의 은혜, 그리스도의 은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겠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A. Badiou)는 은총이란 유산, 전통, 가르침이 아니라 “사건”이라고 했다. ‘육체의 일’에 대한 중단인 동시에 ‘영의 일’에 대한 단언이 은총이라는 것이다. 은총은 영적인 사건, 하나님에 의한 영적인 발생이다. 게다가 그는 “은총은 순수하고 단순한 만남…은총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 아니면서 도래한다는 점에서 율법과 반대가 된다”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신묘년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정신, 판단,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한 해가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설 수 있는 것은 고의적이거나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이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하나님의 영과 올곧은 정신을 추구하는 한 해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이들에게 가득 임하는 2011년이 될 뿐 아니라 은총의 본 속뜻처럼 올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총애를 입어 어떠한 해보다 더 많은 기쁨이 찾아오는 한 해이기를 소망한다.

귄터 보른캄(G. Bornkamm)도 “은총은 새로운 질서, 새로운 언약을 세워준다”고 했던 것처럼, 올 한해는 인간의 추한 무질서가 판을 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어야만 한다. 정치경제적 영역에서 판을 치는 이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두려워 할 것이다.

그가 강조하며 말한 “은혜에 의한 삶이란, 하나님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행위에서 믿는 자들의 모든 행동이 시작되고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올해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안에 있는 시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시간임을 의식하며 행동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거기에 그가 말한 “하나님의 깊이”가 발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깊이나 종교의 건전한 감수성이 상실되는 이때에 우리에게 선사된 “하나님의 깊이”를 보여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하나님의 깊이” 속에 머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은총으로 사는 것”을 향유하며, 은혜로 사는 데에 맛과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혹은 총애를 입은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총증항극(寵增抗極) 즉 자칫하면 하나님의 총애(寵愛)가 더할수록 교만할 수 있으니 더욱 조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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