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1)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냈던 서영훈 장로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남을 차별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으면 됩니다. 도와줘야 할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절대로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대답했다. 소위 산전수전 다 겪었을 올해 89세의 나이에 이렇게 말하는 원로의 말은 마치 예수님 말씀과도 같이 나의 생각을 새롭게 했다.

마태복음 6장 1절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말씀이 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의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하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특별히 “사람에게 보이려고” 라는 말씀에 시선이 멈추었다.

나의 삶의 여정에서 사람에게 보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행한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외치면서도 어느 덧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가 앞서는 내 마음을 보고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왕이면 잘 보이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이겠지만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자신을 조금씩 과장과 위선으로 몰고 가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에게는 불행하게도 ‘하늘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한다’ 고 단언하셨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성형수술’하느라 정신이 없다. 잘 보이고 싶어서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는 한 여인이 있었다. “하나님 저를 좀 죽여주세요”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은 “죽지마라 넌 앞으로 50년은 더 살 것이다. 왜 죽으려하느냐?” 이 음성을 들은 여인은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살기로 했다. 우선 자신감을 얻기 위해 얼굴부터 고치기로 했다. 여기저기 성형수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죽었다. 그녀는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께 따졌다. “하나님 지난번에 세상에서 50년은 더 산다고 해서 마음먹고 여기저기 다 뜯어 고쳤는데 왜 벌써 저를 하늘나라로 불렀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얘 난 넌 줄 몰랐다(너무 많이 고쳐서)”고 했다.

성형수술도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의 수술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생각과 행위 가운데 수술해야 할 부분을 수술하자. 하나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으로, 하나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로,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말할 수 있는 입으로 성령의 수술을 받아보자. 그러면 우리의 의가 성형수술을 한 얼굴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지 않을까.

본문에서 ‘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의 예를 들었지만 예수님의 의도는 어찌 이뿐이겠는가. ‘의’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하고 바른 관계 위에서 행하는 행위이다. 여기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의도가 앞서면 위선죄에 빠지게 되고 교만죄에 빠지게 된다. 처음에는 좋은 동기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점점 더 잘 보이기 위해서 가면을 써야하고 배우와 같이 연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삶이 피곤해지고 어느 덧 위선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잘 보인 것(?) 때문에 교만하게도 된다.

하나님은 오늘도 ‘의도의 순수성’을 중요시 한다. ‘목적의 순수성’을 원하신다. 사람에게 보일 목적으로 하는 구제나 기도 그리고 헌금이나 봉사라면 더 이상 하나님의 상은 없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의도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참 자유한 자요, 행복한 자다. 이것은 내가 부러워하는 삶이다. 과시욕은 노예의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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