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무순교회

10월이 되니 여기저기서 회개의 불이 일기 시작한다. 어느 날 새벽에 한 여자가 나와서 벌벌 떨면서 “주여! 주여!” 부르짖는다. 전도부인이 회개를 재촉하고 구원의 도리를 가르쳤다. 그 여인은 자신이 지은 흉악한 죄를 다 토해냈다. 특히 떡 장사할 때 50원을 더 받은 것을 자복하고 즉시 금전을 내놓기도 했다. 회개의 불은 ‘홍’이라는 여자에게 떨어졌다. 이 여자는 남의 소실로 있으면서 2년동안 교회를 다녔다. 이 여자가 죽어가듯 한창 애를 쓰다가 죄를 토한다.

바로 10월 18일 주일이었다. 설교를 한 후에 통성기도를 시켰다. 성신의 역사가 각 사람에게 충만했다. ‘안’이라는 자매는 수년 전에 모 여관에서 고용살이를 할 때 10원을 절취한 일을 자복했다. 갚아야 천당 가고 갚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가르쳤다. 저녁에 함께 여관주인을 만나 그 사실을 말한 후에 돈과 물품을 내어주고 모자란 금액은 일을 해서 갚겠다며 용서를 청했다. 주인은 크게 기뻐하면서 안심하라며 관대히 처분했다.

이날 밤 새벽 3시 신자는 점점 모여들었다. 기도소리는 늘어가고 땅을 치는 소리, 우는 소리로 매우 소란했다. 새벽 4시 반, 어떤 사람이 권총을 들고 벽력같은 소리를 지른다. 너무 요란하니까 무슨 큰 범죄사건이 났는가 하여 들어왔다는 것이다.

‘안’이라는 여자가 아침식사 후에 또 왔다. 아무래도 성신을 받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날 성도들은 방에 모여서 장 목사가 성신 받는 교리를 성경으로 몇 마디 가르친 다음,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그는 철저한 신앙에 섰다. “갈보리의 십자가는 내가 죽은 십자가요, 오순절의 성신은 내게 임한 성신”이라고 신앙고백을 했다. 믿기 시작한 지 3개월에 중생 성결을 체험하고 넘치는 은혜를 충만히 받았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인가?

또 신유의 영광도 많이 나타났다. 주일에 여학생 하나가 급성폐렴에 결려서 심히 위독한 것을 눈물로 간구함으로써 나았으며, 남학생 하나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심장이 벌떡벌떡 뛰는 위급을 당했을 때에도 기도함으로 즉석에서 나았다. 위장병으로 2주일 동안이나 몸져누워 앓던 고 2학년 학생이 기도하므로 즉시 나았다.

그는 아플 때 조선으로 나간다고 전보를 쳤는데 낫고 나서는 자기 발로 우체국에 걸어가서 이제는 다 나았으니 아니 간다고 전보를 치고 오기도 했다. 부임한지 불과 4개월 만에 이러한 부흥을 보는 나는 조선내지와 각처 교우들의 열렬한 기도의 응답이라고 믿는다. (近代 小復興記 활천 1936. 12. P. 45~49) 

무순교회는 장 전도사 부임 이래 4년 만에 예배당을 한인촌에 우뚝하게 세웠다. 남만주의 모교회인 봉천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포하교회, 구련톤교회 등 모두 자력으로 예배당을 건축했다. 이는 만주 벌판에 성결운동이 거셌던 결과이다. 장 전도사는 1941년 4월에 경성성서학원 강당에서 열린 제1회 북부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북부연회는 경기도, 강원도, 함경남북도, 동만주, 남만주지역 200여 교회로 조직된 연회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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