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의 사건은 이 지구상에 많은 뉴스들 가운데 탑 뉴스이다.
지극히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말구유에 찾아오신 성탄절, 사람들이 이 날을 해마다 반복되는 하나의 축제로만 여기고 지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하고 미천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이 성탄절이다.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늘에는 영광이, 땅에는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고 구원의 기쁨과 진정한 희망을 전했다. 이러한 성탄절에 기독교인들은 소외당하고 고통당하는 이웃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함께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 서러움과 외로움에 동참하면서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성탄절이 되어야 하겠다.

오늘의 이 시점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할까?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사랑의 빛으로, 영광의 빛으로, 평화의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스도는 참 생명이다. 그리스도는 사랑의 메신저로 오셨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스스로 낮고 낮은 천한 모습으로 찾아오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의 나심은 절망한 인류에게 진정한 소망을 주신 것이다. 죄의 문제를 하나도 남김없이 해결하신 것이다.

그는 암흑같은 세상 속에서 한줄기의 빛이요, 생명이다. 우리는 예수의 탄생을 소리쳐 만방에 알려야 하고, 이 기쁜 소식을 온 지구촌에 전해야 한다. 그리고 빛이 되어 어두움을 몰아내야 한다. 어두운 세상을 향해 소리쳐야 한다. 세상의 소금이 되지 못하고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교회의 뼈를 깎는 각성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앞에서 가난한 회개의 절규를 토해내야 한다.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두움을 몰아내는 촛불과 같이 몸을 녹여 맛을 내는 소금과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최근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한반도가 휘청이며 긴장이 고조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며 전쟁과 갈등을 막아야 한다. 평화를 정착시킬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성탄의 본질을 외면한 채 그리스도인들만의 잔치, 교회만의 잔치에 빠져 있다. 사랑의 빛으로 이 땅에 온 본질은 점점 희석되고, 형식적으로 의미를 상실한 성탄을 맞는 기독교인들이 늘어만 간다. 많은 교회들이 주제를 잃어버린 것 같다.

교회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이미 무너져가고 있는 물량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교회의 엔진이 꺼져버려 둔화의 현상이 연출되고 있지 않은가? 사회 곳곳에 있는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을 외면하고 있다. 성탄절 본연의 참 뜻을 잃어버리고 추락하고 있다. 기독교의 본질을 상실했다.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해야 하는 교회들은 마천루에 짓는 일에 관심이 크다. 따라서 어려운 이웃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이처럼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잊고 문명의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결정적 타락을 감행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변질된 성탄문화를 바로잡고 타락되어 가는 어두운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탄생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성장하고 부흥할 것이며 교회가 세상을 향해 참다운 예언자적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성탄절,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날이다. 생명과 평화, 사랑으로 이 땅에 오신 그분을 높여 드리는 성탄절을 만들자. 그래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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