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교회 청소년들이 어느 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됐다. TV가 각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어느 기자가 무슨 사건을 보도한 끝에 ‘지금까지 000에서 00기자가 말씀 드렸습니다’라고 끝맺음을 하는 광경을 자꾸 보다가 이것이 청소년들의 머리에 입력되어 자기도 모르게 기도하면서 이런 종결식 용어를 쓰게 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 어른들은 극존칭을 써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라고 하는 데 반해 학생들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보통 존칭을 써서, 우리 어른들은 그것마저도 불만으로 여겼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과거형 기도를 하니까 완전히 이질감이 생겨서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그렇게 자라난 청소년들이 전도사, 목사가 되고, 집사와 장로가 되면서 여전히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라는 경제학 용어와 같은 현실을 보니 더욱 가슴 아프다.

2000년도부터 이심저심으로 교단 지도자들이 교회 용어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학자들을 불러 연구케 하였으며 그 결과 2004년 ‘올바른 교회 용어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이것을 각 교회 목회자들이 먼저 터득하고 신자들에게 교육 시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인지 아직도 목회자와 장로, 평신도들 속에 여전히 과거형 기도가 나오고 있어 안타깝다. 미래지향적인 기도를 어떻게 과거형으로 끝맺는다는 말인가?

이러한 과거형 기도와 함께 가장 문제시 되는 기도가 ‘하나님, 복 빌어주십시오’다. 어떻게 하나님께 복을 빌어달라고 할 수 있는가? 더구나 목회자요, 장로들인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런 기도를 할 때면 경악을 금하지 못하게 된다.

성경 어디에서도 하나님이 복을 빌어주거나 축복해 주시는 장면은 없다. 하나님은 ‘복을 내려주시기만’ 한다. 성경에 보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3)’고 되어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까지는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는 것을 알았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라는 말씀을 보라.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무리들에게 복을 주시라고 하나님께 비셨다. 즉 축복해 주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축복기도를 들으시고 복을 내려주신다.

천주교에서는 강복(降福)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참으로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는 우리 개신교회에서도 ‘하나님, 축복해 주십시오’라는 신성모독적이고 참람한 기도를 하지 말고 ‘하나님, 강복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친한 장로님의 ‘과거형 기도’를 무려 20여년에 걸쳐서 사정사정해서 고쳐드린 일이 있다. 한번 습관이 되면 그렇게 고치기가 힘든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대오각성하여 잘못된 언어습관, 기도용어를 과감하게 버려야 할 줄 믿는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빌어달라고, 즉 축복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너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어느 신에게 내가 빌면 되겠느냐’고 우리에게 반문하실 것이다. 이래도 계속 ‘하나님, 축복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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