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석성 교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문제에 답하는 것이 기독교윤리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야한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였다(눅 10:27).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자의길 ,제자의 윤리를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는 “형성(形成)으로서의 윤리”라고 하였다.

형성으로서의 윤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대로 닮고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형성으로서의 윤리의 성서적 근거는  “나의 자녀들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19)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형성으로서의 윤리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윤리이다.

첫째, 성육신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닮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하는 말씀처럼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실제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을 말하며, 인간은 우상화의 대상도 경멸의 대상도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성육신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둘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닮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심판의 대상이며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을 의미한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인간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과 세상 속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의미한다. 

셋째, 부활한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본회퍼가 말하는 형성의 의미는 인간 스스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하여 형성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형성이 이루어지는데 필수 불가결한 장소와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이다. 형성으로서의 윤리는 추상적, 결의론적, 사변적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대로 형성되도록 구체적인 판단과 결단 안에서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윤리는 성육신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한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고 그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순종의 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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