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교회가 새로운 대성전을 짓기 위하여 부득이 옛 서울신대 건물을 허물어야만 했습니다. 이로써 서대문 지역에 1920년 건축되어 아현동 고개를 지키고 있던 서울신대 옛 교사는 9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붉은 벽돌로 5층 쌍둥이 건물이던 서울신대 옛 교사는 많은 업적을 만들어 놓고 조용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건물에는 3가지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 건물이 일제시대 서울의 3대 건축물로 많은 관광객과 방문객으로 넘쳐났다는 사실입니다. 서울시내에 3개의 유명한 붉은 벽돌 건물이 있어서 많은 관광객이나 방문객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명동에 세워진 천주교성당으로서 붉은 벽돌로 높이 세워졌고, 둘째는 종로 1가에 기독교YMCA 붉은 벽돌 5층 건물이 세워졌으며, 셋째는 서대문에 위치한 서울신학대학 건물로 붉은 벽돌 5층 쌍둥이 건물은 건축 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으며 종교·교육·문화의 발상지, 성장지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건물 건축을 위해 미국의 많은 후원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모금이 한국에 보내지게 된 과정에 한 선교사의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선교초창기 미국 동양선교회(OMS) 본부에서 미국 여러 곳에서 모금한 재정을 어느 곳에 보내냐는 문제를 토의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대의원 이사들은 일본 동경으로 보내기를 합의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한국보다 국력이 강하며 경제대국이라서 이들 이사들은 일본 동경으로 뜻을 굳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엘마 길보른 선교사 한 사람만이 한국 서울로 보내기로 원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에 기독교 신자가 많으며 한국인은 종교성이 많고 열성적 신앙자들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모금한 많은 선교비가 한국으로 보내지게 되었고 서울신대는 5층 쌍둥이 붉은 벽돌 건물을 짓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으로 인해 한국 선교부와 일본 선교부가 사이가 좋지 아니한 관계를 가져왔음 또한 사실입니다. 다만 희생적이고 적극적인 선교사 한 사람이 헌신을 해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셋째로 구입이 어려운 땅을 매입했고 수많은 행사와 인물 배출로 큰일을 한 사실입니다. 서대문 아현동 땅이 원래는 얕은 산으로 왕가의 소유로 정부에서 관할한 땅이었기 때문에 개인이 매입할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정치가 바뀌는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고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동양선교회에서 구입하여 학교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단 뿐 아니라 초교파적인 선교대회, 전국교회교사대회, 전국어린이학교, 전국 선교대회, 해외선교사 대회 등 한국교회의 주목을 받는 많은 행사를 하면서 서울의 명물 건물로 큰일을 하였습니다. 서울신학대학교 졸업생이 9000여명 되는데 4000여명이 서대문 신대 건물에서 졸업하였고 이들 중에는 유명한 신학자인 이명직 목사, 정진경 목사, 조종남 목사 등을 비롯해 유명 부흥사인 이성봉 목사, 임영재 목사, 이만신 목사, 그리고 순교자 박봉진 목사, 문준경 전도사 등 여러분이 배출되었음을 감사합니다.

앞으로 서울신학대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100주년 기념 건물을 건축하게 된다고 하니 옛 교사가 사라진 것에 아쉬움은 남지만 미래를 기대하게 됩니다. 100주년 기념건물 안에 역사박물관을 만들어 역사적 유물과 서대문 교사 모형 등을 보관, 미래와 과거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도록 하길 기대합니다. 이 일에 이명직목사기념사업회에서도 적극 나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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