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함께 있는 의좋은 부부의 상징으로 원앙새를 꼽는다. 생물학자들은 푸른박새도 원앙 못지않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푸른박새는 암수 한 쌍으로 살기는 하지만 수컷이 상처를 입거나 죽으면 암컷은 그 즉시 다른 수컷과 짝을 이룬다. 혼자서는 새끼를 기를 수 없는 현실에 재빨리 적응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해도 한국인의 가치관에서 보면 무정하고 냉혹하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들과 그들을 돕는 이들의 상호비방은 그 무정함과 냉혹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푸른박새의 행태 따위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정도였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기에 눈에 핏발을 세워야 했겠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한 나라에서 같은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저토록 비열할 수 있을까 싶은 심정이었었다.

▨…기독교의 선교를 가장 완강하게 거부하는 세력은 모슬렘이다. 이슬람의 정신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탓도 있겠지만 1095년에 시작되어 2백년이나 지속되었던 십자군 전쟁의 잔학성이 세월과 상관없이 이슬람의 종교적 폐쇄성을 더욱 강화시킨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을 십자군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여 이스라엘과 서구에의 항전을 성전으로 독려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의 끝은 어디일까를 물은 수많은 소설가들이, 극작가들이 고개를 흔들며 절망했었다. 가족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사회 안에서조차도 가슴을 할퀴고 마음을 찢어놓는 인간의 행태는 지식이나 교양 또는 신앙으로서도 그 변화를 이루어낼 수가 없을만큼 비관적이었던 것이다. 인간이란 너나 할 것 없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있는 이리와 같아서 푸른박새 따위와는 비교도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설마하니 소설속의 인간들처럼그렇게 무정하고 냉혹한 이기심의 발로는 아닐것이고, 장로제적은 해야했으니까 했을 것이고 부당하니까 어르신들은 성명을 냈을 터이고, 옳게 처리했으니까 총회장은 소신을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옳다고 생각한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닌 까닭일까. 장로 제적이라는 소용돌이가 어디에서도 신앙의 넉넉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푸른박새만도 못한 때문일까. 아니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무임승차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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