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우 보수적인(?) 어느 교단 소속의 목사님이 평신도 교육을 위한 모임에서 성경을 가르치셨다. “나는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라는 말씀을 성경말씀 그대로 믿습니다. 과학자들이 무엇이라 말하든지 나는 성경 말씀대로 태양 보다 지구가 먼저 창조되었다고 믿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태양이 창조된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성경 말씀대로 믿는 신앙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다.

▨… 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 모두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성경 말씀대로 믿어야 한다는 선언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저들은 빛이 있으라 하시매의 빛이 태양을 의미하는 것인지, 지구와 태양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창조되었느냐는 순서의 확인이 우리의 신앙에 그처럼 의미를 가지는 일인가를 물을 기력을 잃고 있었다. 성경 말씀대로란 말 앞에서는 어떤 물음도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 “나는 요즈음 새삼스럽게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곧 성서가 제대로 설교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서 본문에 대한 침묵과 그 메시지의 강조점으로부터의 이탈, 성서를 너무 성급하게 펴 보는 반면, 그 가운데 언짢은 것들을 덮어버리고 본문의 문자에 집착해서 그것을 늘이고 늘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R. 보렌·설교학원론)는 지적은 남의 나라 남의 교회 이야기일까.

▨… 설교자의 고뇌를 바르트처럼 정곡을 찔러 드러내 보여준 신학자가 또 있을까. “우리는 신학자로서 하나님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 즉 말해야 하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다.”(K. 바르트·하나님의 말씀과 신학) 이런 설교자의 고뇌는 감춰야 하는 것일까.

▨… 플라톤은 진리를 알아내려는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밝혀 주었었다. 그에 의하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란 동굴 입구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도록 묶여진 채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으로 사물의 실상을 알아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 설교하는 고뇌가 그 한계를 알지 못한 채 설교하는 이들보다 깊을 수밖에 없다는 데 설교자의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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