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파죽지세로 프랑스를 점령했다. 패전한 프랑스에는 독일의 꼭두각시 비시 정부가 들어섰다. 비시 정부는 유태계가 공직에서 물러나고 모두 등록하도록 고시하였다. 그러나 베르그송(Henry Bergson 1859~19 41)에게만은 교수직을 유지하고 등록하지 않아도 좋다는 특혜를 베풀었다. 81세의 노인인 베르그송은 두 가지 특혜를 거부하고 부축을 받으며 등록소 앞에 줄을 섰다.

▨… 1941년 7월 하순, 아우슈비츠 14호 감방에서는 유태인 한 사람이 도망했다. 수용소장은 한 사람의 도망에 열명을 아사형에 처할 것을 명령했다. 무작위로 열명이 선택되었다. 한 젊은이가 아우성쳤다. “나는 처자식이 있어, 죽을 수는 없어.” 수용소장이 냉소를 머금는데 한 사람이 나섰다. “저 사람 대신 내가 죽겠소.” 막시밀리안 콜베(Maximilian Kobe, 1984~1941)라는 사제였다. 그는 그렇게 죽었다.

▨… 베르그송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혜를 거부했다. 그가 성취한 학문적 명성 때문에 주어진 특혜였지만 그는 단호했다. 거부하며 남긴 그의 한마디. “나는 내일이면 박해를 받게 될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 아우슈비츠의 아사감방에서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을 대신해 죽은 콜베가 남긴 한마디. “나는 처자식도 없고 병들어 아무데도 쓸모없는 사람이요.”

▨…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가 포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포기할 마음이 없고 또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줄기차게 선언한다. 그러면서 기세좋게 내뱉는다. 정치꾼인 당신 때문에 교단이 어지럽고, 자신의 뱃속만 챙기는 당신 탓에 교단이 부흥되지 않는다고 …. 모든 것은 언제나 당신 때문이다.

▨… 베르쟈예프(N.A.Berdyaev, 1874~1948)는 기독교의 정화를 위한 심판이 내려질 것을 경고했었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에 내려질 심판은 기독교가 그 자신을 배반하고 또 자기 자신을 모독한 죄를 향한 것이었다. 그는 단언한다. “역사의 교회는 가톨릭이든, 정교회이든, 프로테스탄트이든 그리스도의 모든 계시를 현실화하고 있지 못하다.” 포기해야 하는 것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현실 속에서 이뤄야 하는 명령은 포기하는 우리를 베르쟈예프는 예견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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