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매이지 않는 새로운 존재로
인간이 던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며 중대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일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형이하학적 답변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형이상학적 답변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밤에 예수를 찾아 온 초대받지 않은 손님 니고데모(요.3)같은 사람은 후자에 속했다. 아무래도 그는 현재의 자신에 대해 불만족했던 것 같다.
사실 여느 사람들처럼 니고데모는 참된 자기(the true Self)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거짓 자아 체계(false ego-system)에 붙들려서 살아가는 군상(群像)들 틈바구니에 끼여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의 출생 배경, 직위, 학위, 재산, 사회적 성취 등 이 모든 것들은 참된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지만, 그는 그것들을 자기 자신인 양 여기며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야음을 틈 타 예수를 찾아 온 것은 더 이상 가면(Mask) 뒤에 숨어서 살아갈 뜻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런 니고데모를 향하여 예수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환언하면, “네가 쓴 그 가면을 벗어던져야 참된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참 자기를 발견한 자는 천국 백성이다(“천국은 네 안에 있느니라”, 눅 17:21).
그런데 참 자기를 발견하려면 먼저 참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 칼빈이 그의 책 ‘기독교 강요’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에 관한 지식(knowledge of God)을 가질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에 관한 지식(knowledge of the Self)을 가질 수 있다. 웃시야 왕이 죽고 난 다음, 나라의 운명을 걱정한 이사야는 성전 예배에 올라간다. 성전 예배에 참여한 그는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발견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있는 죄인인 자신을 발견한 이사야는 회개한 후 죄 사함을 받는다. 그리고 난 후 그는 사명을 부여 받는다.
이사야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고(알고), 죄 사함 받은 후에 사명적 자기를 발견한 것처럼(사 6장),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거듭난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목표-하나님의 영광-를 위해 살아간다. 새로 거듭난 사람,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위에서 난 사람’은 더 이상 가면(Mask) 뒤에서 거짓 자아체계에 매여 살지 않는다.
예수의 제자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새로운 존재(new being)인 하늘로부터 난 자(born from heaven), 신학적인 표현으로, 중생(重生)한 자에 대해 몇 가지로 정의했다: ①의를 행하는 자(요1 2:29) ②과거의 습관적인 죄에 머물러 있는 않는 자(3:9) ③사랑(아가페)하는 자(4:7) ④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5:1) ⑤세상을 이기는 자(5:4)가 곧 거듭난 새로운 존재다.
그렇다. 새로운 존재는 더 이상 과거의 자신에 매여 있지 않다. 과거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존재(고후 5:17)로 부활했기 때문에, 삶의 방향과 가치가 혁신적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과거의 습관적인 죄에 머물지 않으며, 의와 사랑을 실천하며(사랑의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간다.
예수 안에서 중생한 자 안에는 예수께서 계시고, 그 또는 그녀는 예수 안에 있다. 이제 둘은 하나다(Oneness). 이 결속(bond)을 끊을 수 있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