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회하고 있는 동네는 한창 G20정상회의 준비로 분주하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기도 하다. 그 옆에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천년고찰 봉은사가 있다. 그런데 최근 그 봉은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교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 청년선교단체 찬양인도자학교의 훈련과정 중 몇 명의 젊은이들이 봉은사 경내에서 이른바 ‘땅밟기’를 하면서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유튜브’에 올라온 이후 각종 인터넷사이트를 비롯 공영방송 뉴스까지 언급되는 등 일파만파 퍼져 나가고 있다.

6분31초 분량의 동영상을 살펴보니 해도 너무 한 것 같다. 동영상의 청년들은 봉은사 대웅전 안팎을 돌면서 그 안에 있는 불상과 불경 등을 향해 ‘사람들이 만든 우상들’ ‘헛되고 헛된 것들’ ‘주님, 우상은 무너지고 주의 나라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불교인들의 감정을 자극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땅밟기’란 무엇인가? 여호수아 6장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여리고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매일 한 바퀴씩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았던 이야기가 있는데, 이를 근거로 하여 90년대 후반부터 학원선교단체들로부터 시작하여 지역교회에 이르기 까지 ‘여리고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을 돌면서 기도하는 문화가 생겼다.

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교계의 반응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공격적인 선교로 논란을 일으켰던 모 선교단체 대표는 이번에도 ‘땅 밟기 기도가 왜 잘못된 거냐? 할 수만 있다면 절간에 들어가서라도 기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어떤 보수교단의 신학자는 땅밟기는 성경에도 없고 미신적 행위라고도 말하고 있으며, 다소 온건한 신학자는 ‘사찰에 들어가서 그렇게 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가 비판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행동은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데 장애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이번 사건을 일으킨 단체의 대표가 봉은사에 찾아가 사과한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보는 순간이었다. 사과를 받는 봉은사 대표는 마치 훈계라도 하 듯이 ‘그동안 동영상으로 유포되지 않았을 뿐 이런 일은 빈번하게 있었다. 남을 배려하고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청년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일 것”이라면서 사과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사과할 수밖에 없고 사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씁쓸한 심경은 숨길 수 없다.

이번 논란에 대해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이라는 단체는 성명을 통해 ‘다종교 다인종 한국 사회에서 종교계의 존중과 배려, 상생의 종교문화를 위한 활동이 전개되기’를 바란다면서 정부 당국을 향해서도 ‘종교차별, 종교 갈등 유발행위에 대한 점검과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면서 ‘최근 일부 개신교 단체의 종교. 사회 갈등 유발 행위와 관련한 입장'을 선언했다.

그러면 이번 일로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까? 그동안 불교계의 행동을 볼 때 지나친 반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매년 185억원의 국가예산이 템플스테이 사업에 투자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KTX 울산역(통도사)명칭 선정문제를 볼 때도 장장 11km나 떨어져 있는 종교시설을 역 이름에 병기해달라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또한 석탄일 전후 2개월 이상 온 나라, 도시를 덮고 있는 연등 문제로 인하여 소방문제를 비롯 온갖 민원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다만 차제에 우리 자신의 문제를 점검해야 하겠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와 같이 행동한 것은 이웃종교에 대해 사려 깊지 못했고 지혜롭지 못했고 전략적이지도 못했다. 선교는 대적의 세력을 향해 싸우는 것부터가 아니라 사랑과 긍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번 동영상을 볼 때 사랑해야할 대상이나 전도해야할 대상에 대한 관심보다는 어떤 물건이나 사물에 대해서 마치 적으로 생각하고 접근했던 것 같다. 우리의 선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야 한다.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접근해 가는 것이 올바른 땅밟기 기도의 방향일 것이다.

기독교는 반지성적, 반이성적 종교가 아니다. 시대의 부조리와 잘못된 문화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주신 이성으로 바로 해석하고 분별해야 한다. 역사와 사회, 문화와 신학 등 현실에 대한 이성적 성찰과 성령의 조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무시할 때 편협한 기독교,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성경, 예수님의 가르침과 상관없는 자기 고집과 비뚤어진 신념만 남게 된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교회와 성도들에게 바른 신학과 신앙이 세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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