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이 13개월 만에 다시 이뤄졌다. 60년 전에 전쟁으로 헤어졌던 이산가족들의 만남은 그야말로 애환(哀歡)의 큰 마당이었다.

북측 상봉신청자 97명과 남측 가족 436명은 이날 오후 3시10분쯤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내 행사장에서 꿈에 그리던 혈육을 감격적으로 재회했다. 특히 이날 상봉 장소에 나온 북측 신청자 중에는 국군포로 출신인 리종렬(90), 리원직(77), 윤태영(79), 방영원(81)씨 4명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6.25 전쟁 중 우리 군에서 실종되어 이미 사망 처리된 1만 3천여 명 중 4명이었다. 또한 북측 신청자 중 최고령인 리종렬씨는 아들 이민관(61)씨와 동생들을 만나는 등 상봉자들이 대부분 고령자들이었다. 이들 이산가족들은 둘째 날인 31일에 오전 9시 ‘개별 상봉'(가족 단위 비공개), 낮 12시 ‘공동 점심식사', 오후 4시 ‘단체 상봉'으로 다시 회포를 풀었고, 셋째 날인 11월 1일에는 오전 9시 ‘작별 상봉'을 끝으로 `2박 3일' 일정을 마무리했다. 또한 제2차 상봉으로 11월 3일에는 남측의 상봉 신청자 96명이 2박 3일 일정으로 금강산에 가 북측 가족 207명을 만났다.

민족의 한(限)이 짙게 서린 남북이산가족의 첫 상봉은 남북적십자사의 협의로, 6.25전쟁이 발발한지 35년 후인 1985년 9월 20일에 시작했다. 이때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사업으로 65가족(남 35, 북 30)이 서울과 평양을 각각 방문하여 사흘 동안 서로 만났다. 그 후 지난 추석을 전후하여 모두 16차례의 대면상봉과 7차례의 화상상봉이 있었다.

2000년 이후 이산가족의 상봉행사는 이번까지 모두 18번 열려, 남북 간 헤어진 이산가족 3500명만이 만났을 뿐이다. 통일부에 의하면, 지난 달 한국에서 이산가족상봉 신청자가 8만 3천명인데, 그 중 70세 이상이 76%로 모두 고령자이기 때문에 잔여 이산가족 상봉은 매우 시급한 현실이다. 이번 이산가족의 상봉을 계기로 정부에게 다음 몇 가지를 당부한다.

첫 번째로, 국군포로 출신 4명의 확인으로 국군포로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됐다. 남한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반공포로를 석방시키기도 했지만 북한은 국군포로를 송환하지 않고 북한에 남긴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대외적으로 국군포로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만큼 정부는 남북적십자 회담 등을 통하여 국군포로들이 송환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정부는 이 송환 과정에서 서독이 동독의 정치범 석방을 위해 1인당 액수를 정해 지불했던 ‘프라이카우프’ 방식을 사용해서라도 국군포로를 송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떠나 국군포로는 나라의 부름 받아 싸우다 포로가 된 자들이므로 그들의 생환은 국가의 책임이다.

두 번째로 국군포로를 포함한 납북자의 생사확인과 서신교환은 물론 그들 이산가족의 상봉을 시급히 정례화하여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의 확대를 위해 북한이 쌀 50만t, 비료 30만t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산가족들의 눈물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정치적인 부담이 있을지라도 이들의 시급한 요구를 풀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북한과의 적극적인 협상을 통하여 남북 긴장이 고조될지라도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와 같은 인도주의적인 측면의 남북협력이 결코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기를 소망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남북간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통일의 물꼬가 홍수처럼 터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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