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기독교 교파와 교회가 거의 예외없이 교세에 대한 이해를 양적 확장에서 찾고 있다… 물론 양적 확장이 동시에 질적 향상을 가져온다면 그것은 참다운 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양과 질이 각기 다른 구심점을 가지고 선회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한완상, <저 낮은 곳을 향하여>)

▨… 한국교회는 ‘교세확장병(?)’에 걸려 있다고 누군가는 진단한다. 한 명의 영혼이라도 구원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구호가 넘쳐난다. 고구마처럼 찔러보라, 불도저처럼 밀어 붙이라, 때론 진돗개처럼 물고 놓지 말라고 강요한다. 너무 통속적이고 상대방을 거북스럽게 할 이 말들에 목회자들은 열광하고 성도들은 아멘한다. 속뜻은 겉말처럼 그렇지 않지만 ‘상품화’ 과정에서 과격해지고 자극적이 된 것일까? 아니면 한국교회가 그것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 교회 역사가 말해주듯 교회는 성장했고 놀랄 정도로 부흥했다. 순교를 각오한 복음전파의 열정과 나눔을 생활화한 초대교회 공동체의 신앙, 순수와 청빈의 삶을 산 중세 수도사들의 헌신, 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진 중세교회를 향한 ‘종교개혁’의 부르짖음,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선교사들의 헌신이 낳은 결과임을 공감할 것이다. 20세기 이 놀라운 역사를 이끄는 한 축이 한국교회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예수의 제자’로서 교회를 부르기에 부끄러움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어느 나라보다 거대한 규모로 성장한 한국교회의 모습은 하나님의 은총이요, 축복이다. 순교를 각오한 신앙 선진들의 뜨거운 열정과 헌신의 결과임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부끄러움의 근거는 양적성장에 비해 질적 향상이 따르지 못함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 기독교학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인간성’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진행했다고 한다. 신학자들의 눈에는 한국 기독교인의 ‘신앙’을 논하기 전에 ‘인간성’을 살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그것이 한국교회의 성장과 성숙의 걸림돌이었을까. ‘부흥’을 키워드로 한 성결교회가 ‘양과 질이 서로 다른 구심점을 가지고 선회’하는 현실을 바로잡을 대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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