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온 세상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팬데믹 시대입니다. 한국은 50일 넘는 장마를 겪었고, 중국은 올해에만 네 번째 폭우로 홍수가 범람했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태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 물난리를 겪고 있습니다. 지진도 일어나고 전쟁도 일어납니다. 세상 돌아가는 징조를 보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말세의 징조입니다. 

며칠 전 집으로 도착한 소포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의 정성껏 준비한 서류와 CD가 도착했습니다. 그 두툼한 서류에는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시니 휴거를 준비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카톡으로 소식을 주시며 말세가 정말 도래했습니다. 휴거가 얼마 안 남았다고 준비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홍수로 중국이 곧 망한다는 것입니다. 신천지는 12지파 이름을 이용합니다. 14만 4천의 숫자에 집착합니다. 신천지가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이 세상에 함몰되지 않고 깨어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것은 너무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편지와 메시지를 받으면서 그분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보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로잡혀 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어떻해서든 14만 4천에 들어가려고 불나방처럼 신천지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목회자의 잘못이 얼마나 큰지 책임을 통감합니다.

위기가 닥치면 인간의 본능은 방어기제를 발휘합니다. 방어기제란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의식이나 행위’입니다. 이런 방어기제로 나타나는 현상은 다양합니다. 억압, 부정, 투사, 취소, 합리화, 행동화, 동일시, 퇴행 등으로 나타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어려운 일을 만나면 신앙의 방어기제가 나타납니다. 자신의 자아를 억압하기도 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도망가고 싶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에 합리화시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믿음은 이 세상에서 도망가는 삶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이 세상에서 고난과 영광에 동참함으로 승화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곧 다가오니 이 세상을 등지고 하늘로 올라가는 날만 기다리는 삶은 건강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성경이 쓰여지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정말 말세의 시대였습니다. 신앙을 지키는 일은 목숨을 바꾸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 기독교 공동체가 알 수 있는 상징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신다는 말씀까지 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정말 말세의 말세였을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마라타나,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우리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 기다림은 현실을 회피하거나 도망가는 삶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종말은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과 함께 내 삶에, 가정에, 공동체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고난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의 고난에 참여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마지막 고난을 피하기 위해 안전한 섬 (피지)이 있다면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휴거가 전공인 분들에게 달려가 흰 옷을 입고 기다립니다. 중국이 무너지는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 가운데 살게 하신 그 분의 뜻을 생각하며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시는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중국을 언제 망하게 하실지 하나님의 일에 월권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주님을 묵상하고 성령님과 동행하십시오. 이 땅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 동참하십시오. 그러면 어느날 나를 안아주시는 주님을 반드시 만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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