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신앙고백, “ΙΧΘΥΣ”(익투스)

 바야흐로 가을이다. 논밭은 황금들판을 수놓았지만 올해 유달리 많은 비로 농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가을의 한 장을 장식할 단풍잎이 우리 눈앞에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 행락객들은 유수한 고장과 명산 유적지를 찾아 떠나고 자동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서두르느라 꽁무니 관리도 제대로 못할지 모른다. 자동차 꽁무니를 찬찬히 뜯어보면, 어떤 차는 연인들의 이름 이니셜을 스티커로 붙이기도 하고, 간혹 해병대의 마크도 눈에 띈다. 그런데 유독 물고기 모양의 스티커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물고기 모양 안에 새겨진 “익투스”(ΙΧΘΥΣ)라는 헬라어 알파벳이다. 이제 우리는 이 헬라어 원어를 보면서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헬라어로 “물고기”라는 뜻인 이 “익투스”는 신약성경에 20번이나 등장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아는 성경말씀 마 7:9-10절(“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ΙΧΘΥΣ:익투스]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을 비롯해서, 마 14:17-21절, 눅 11:11절(물고기), 마 17:27절(고기), 눅 5:5-9절(고기), 눅 24:42-43(구운 생선), 요 21:1-11(큰 고기) 등 곳곳에서 ‘익투스’라는 헬라어가 다르게 번역되어 등장한다.

특별히 우리말 성경에 물고기, 고기, 생선 등으로 번역되는 ‘ΙΧΘΥΣ’는 로마 카타콤의 프레스코 벽화에서 발견된 후, 초대교회 성도들의 상징이 되어 왔다. 1세기 지중해 연안에 살았던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로마제국에 의해 큰 핍박을 받을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에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 절박한 시대에 ‘물고기’ 표식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을 알리는 일종의 암호였던 것이다.

이렇게 물고기가 그리스도인의 상징이 된 것은 헬라어 단어의 다음과 같은 특징 때문이다. 물고기란 뜻의 헬라어 ΙΧΘΥΣ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뜻 깊은 신앙고백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왜냐하면 Ιησουζ(예수스=예수), Χριστοζ(크리스토스=그리스도), Θεου(테우=하나님의), Υιοζ(휘오스=아들), Σωτηρ(소테르=구세주)의 첫 머리 글자만을 모으면 바로 “물고기”라는 뜻의 “익투스”(ΙΧΘΥΣ)라는 단어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당국의 박해를 피해 지하 도시 카타콤에 숨어서 물고기 상징을 통해 예수에 대한 신앙을 고백했다. 또한 카타콤의 미로에서 물고기 머리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집회장소를 찾아갔으며, 한 사람이 물고기의 반을 그려 놓으면 다른 사람이 나머지 절반을 그려 넣음으로써 서로가 예수에 대한 하나의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던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순교하면서까지 예수를 향한 신앙을 ΙΧΘΥΣ를 통해 고백했듯이, 오늘날 자동차 범퍼 뒤에 붙어 있는 ΙΧΘΥΣ 또한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신앙고백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명품장식’이 되었다. 그런데 왠지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무게의 차이’가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번 독려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거룩한 용어가 오늘날 자동차의 액세서리나 교통사고를 예방하고자 붙여 놓은 부적과 같은 의미가 되어버린 것 같은 씁쓸한 느낌을 저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익투스라는 거룩한 이름이 자동차의 범퍼 뒤에 붙어서 그 신앙고백마저 뒷전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필자의 마음이 자동차 운전을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절실하였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현재, 아니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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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곤 : 서울신대 신학과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국립대학교(신약학)에서 사본학의 거두인 요한네스 까라비도뿔로스 교수로부터 마태복음을 연구, 한국인 최초로 그리스에서 신학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서울신대, 연세대, 호서대 등에서 출강하고 있으며 『마태복음의 역사, 신학, 선교』(헬라어), 『마태의 예수이야기』 등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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